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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선수필] 봄호에 <골무> 발표

율리안나 2025. 9. 15. 13:49

골무

 

장금식

 

감토 할미라는 이름이 익숙한가요? 조선 후기 수필 규중칠우쟁론기에 나오는 칠 우 (바늘··가위··인두·다리미·골무) 중 하나인 골무의 제 별명입니다. 어느 날, 인간의 공치사와 신세 한탄, 불평불만이 규방에 휑한 바람을 몰고 옵니다. 쟁론으로 입이 분주하고 칠 우의 불평 언어와 규중 부인의 꾸지람 언어가 아슬아슬, 충돌하다 조각납니다. 깨진 조각을 붙여야겠기에 할미인 제가 봉합에 나섰습니다. 친구들의 공을 은근히 부각하며 부인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기심이 만연할수록 세 치 혀와 다급한 입은 상처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통증을 어떻게 덜어낼 수 있을까요. 제 역할은 규방 부인을 이해시키고 친구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요즘 골무는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지금 서랍에 곱게 누워있습니다. 옛 생각을 해 봅니다. 아득한 시절부터 손가락 사이에 저를 끼우고 동고동락했던 주인과 함께 늙어갑니다.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저를 자식처럼 아끼고 늘 곁에 두었던 주인마님을 저는 어머니라 여깁니다.

손 대신 기계가 옷을 만드는 세상, 직접 옷을 지어 입을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때론 서랍 속의 삶이 심심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만, 어머니의 손길로 자주 불려 나가지는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제가 서운하거나 한심하지는 않습니다. 세심하고 품격있는 바느질을 요구할 때나 다른 용도로도 많이 쓰여 저의 존재는 아직 유효합니다. 플라스틱, 고무, 가죽으로 된 여러 친구가 있지만 그래도 손가락에 딱 붙는 것은 천으로 만든 저입니다. 여러 겹 덧대고 겹쳐있어 촉감이 폭신하고 따뜻하답니다. 얇아지고 해지고 보푸라기 한가득 너덜거린 몸으로도 바늘에 찔리는 어머니의 검지를 감싼답니다. 늘 검지를 위해 경건한 자세를 유지합니다. 방패를 들고 고통과 맞서 싸우는 우직한 전사 같습니다.

5남매 중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남편은 실직상태였습니다. 그때, 대구 칠성시장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며 하루하루의 삶을 꿰매느라 어머니의 검지와 저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까다로운 사람들의 일거리가 어머니 손으로 건너올 때 어머니와 함께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바느질거리가 늘 수월한 것만 있지는 않잖아요. 부잣집 마님의 명주 저고리같이 손길이 많이 가는 것을 만나면, 자주 실수를 하고 험한 말을 들으며 거듭 통증의 부피를 키우게 됩니다. 몇 배의 노력을 들여도 제대로 된 삯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인고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의 결정체는 더욱 단단해지지요. 상처와 방어 사이의 온도 차는 큽니다. 내면에 생기는 습기는 소리 없이 눈물방울을 만들었습니다. 희망을 와르르 무너뜨리며 눈부터 손목, 팔목, 등줄기까지 얼룩덜룩 자국을 남겼습니다.

쉼 없는 바느질로 어머니는 손가락 감각이 무뎌져도 저를 잠시 뺏다가 다시 끼곤 했습니다. 무딘 먹먹함과 아픔, 감정의 통증까지 담은 바느질함이 수북할지라도, 구부러진 검지를 쫙 펴고 내면에 어우러진 잔주름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저의 모양새가 너덜너덜해져도 어머니와 저는 미끄러질 수 있는 가족의 위기를 손가락 사이로 떠받치며 견뎠습니다. 아슬하게 곡예 같은 삶을 살면서도 흔들림의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90세를 바라보는 어머니, 5남매가 다 출가하여 제 밥벌이하는 요즘도 지난했던 삶을 토닥거리듯 바느질함에서 이따금 저를 꺼내 만집니다. 어머니의 손등엔 어느새 검버섯 꽃이 촘촘히 피었습니다. 생채기의 행렬이라 해야 할까요. 푸르렀던 고생이 희끄무레한 갈색으로 착색된 것이지요. 어머니는 가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제게 감사의 말을 중얼거립니다.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게으르지 않았구나. 참 열심히 살았다.’ 힘들었던 삶과 화해라도 하는 양 구겨진 저를 이쪽저쪽 매만지다 다시 함에 넣습니다.

 

저의 헌신이 숭고하게 돋보이기까지 바늘의 날카로운 침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바늘이 없다면 저도 없는 것이지요. 바늘은 찌르면서 살고 저는 감싸면서 살아왔습니다. 묘하게도 찰떡같은 인연입니다. 사람들끼리도 상처를 주는 쪽과 받는 쪽, 창과 방패가 잘 어우러져야 하겠지요. 바늘과 골무가 합심해야 멋진 옷 한 벌이 완성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어머니 친구의 딸은 초등 5년 때부터 학교폭력으로 시달리다 고1 때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답니다. 결국, 이 나라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이 바늘처럼 찌른 말들과 따돌리는 여러 행동이 그 아이에겐 극단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어떻게 그런 폭력을 나에게 할 수 있어.” “뭐 그걸 가지고 그래. 잊어버려엇박자로 일그러진 대화는 불화로 이어지고 아이와 가족의 삶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신과 영혼의 아픔은 상상 이상이었겠지요. 세월이 지나 그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왔다고 하더라도 부서진 영혼의 보푸라기는 누가 없애주겠습니까. 학교와 어른들은 무엇을 했나요. 저처럼 골무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왕따를 시키거나 폭력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사람들로 인해 혼자서 끙끙 앓고 고민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폭력과 괴롭힘은 바느질이 아닌, 상처를 내는 바늘이 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질 때마다 저도 마음이 아파집니다.

덧대고 잇대도 뜯어진 상처는 깊어지기만 하고 가정이나 이웃, 사회로부터 떠밀려 고통의 바다를 떠돌게 합니다. 고통의 덩어리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치며 검정 비닐처럼 둥둥 떠다닙니다. 잘 삭거나 썩지도 않습니다. 황금빛 노을이 파도에 짓이겨져 만신창이가 된 먹빛 꽃잎 같습니다. 피해자의 절규나 항변은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슬픈 물결만 남깁니다. 관계의 시침질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엉킨 실타래 풀기는 두부모 자르듯 쉽지 않습니다. 해결의 실마리 찾기도 힘들고 마음이 하나 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로로 세로로, 세모로 네모로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 시시각각 변할 때마다 수화를 이해하듯 해석과 번역이 필요합니다. 각을 꼿꼿이 세운 뾰족한 언어들이 곡선으로, 소통의 언어로, 따뜻한 손자국을 한 땀 한 땀 남기는 배려의 언어로 남는다면, 저는 새 이불, 새 옷을 만드는 기쁨에 춤출 것입니다.

저는 주어졌던 역할에 충실하며 고통으로 얼룩진 인간의 바다를 향해 다시 검지를 올곧게 세울 것입니다. 그동안 어머니와 이어온 저의 시간을 다시 돌아봅니다. 장인이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는 방식이 남다르듯 저는 시간의 결을 특별한 방식으로 지켜왔습니다.

불빛이 꺼져도 지금 저는 안온하게 서랍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그저 바라만 보는 시간도 건강한 쉼이 됩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오래도록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긴 세월 동안 특별한 옷을 만드는 장인들의 손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듯이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저의 시간에 믿음을 가지며 삶의 파고에서 제 길을 묵묵히 지켜갈 것입니다. 시간의 물살은 거칠다가 고요하기를 반복하며 리듬을 탑니다. 그 리듬에 몸을 맡기며 시간 너머의 시간에서 서두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감토 할미라는 제 별명이 변하지 않듯 인생의 장인들에게는 제가 늘 진행형일 것입니다. 세상이 저를 모르는 척해도 인간사 고통을 공유하며 한 송이 화해의 꽃을 피우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남몰래 흘린 사람들의 눈물이 얼룩이 아닌 생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기쁨의 미소가 저의 둥근 몸 안에서 맴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