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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들판의 허수아비

율리안나 2015. 4. 20. 20:18

내 들판의 허수아비
장금식


지하철이 내 마음을 아는 듯, 빠르게 선로 위를 달려온다. 문이 열리자마자 얼른 탄다. 차바퀴는 20대의 내 추억에 시동이라도 걸어주듯 점점 속도를 낸다.

“지금 서울에 왔는데 잠시 만날 수 있을까?”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음성이었다.
“당장 ‘성심의 집’으로 갈게요.”
수화기를 놓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순간, 그 무엇엔가 이끌려 내가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녔던 바로 그분이었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 못지않게 빼어난 미모는 낙엽으로 물든 가을 교정을 멋지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캠퍼스가 그 당시 나에게는 황량한 들판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의 둥지를 잃고 무언가를 붙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수녀님이다. 문학을 통해 인간과 하느님을 알게 해 주었고 물질적·정신적·종교적 방황 속에 헤맬 때, 세상 한 가운데서 두 팔 벌리고 나를 포근하게 안아 주었던, 어머니와 같았다.
수녀님을 통해 생텍쥐페리(Saint-Exupery)와 파스칼(Pascal)을 만났다.『어린왕자』와 『팡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고 내가 생활 속에서 사유할 때마다 늘 동행해왔다. ‘신과 함께한 인간의 행복’과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은 내 삶의 또 다른 화두가 되어 힘든 시절을 견디는데 버팀목이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없는 피폐한 마음을 수녀님이 녹녹하게 해주었고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추천서를 받게 도와주었다. 직장을 갖기까지 나를 세심하게 돌보아 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다.

그분의 목소리와 함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하철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진다. 그분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 칠팔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사연들,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있을까?
수녀님은 수녀원 앞에서 그림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떨리는 가슴을 안고 수녀님의 손을 꽉 잡았다. 늘 수도자답게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체온이 전달되는 순간 내 뛰는 가슴은 진정되었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옛날이나 똑같네. 어떻게 지내?”
가정주부로서 일상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 문학 공부를 하며 수녀님이 좋아하시는 까뮈, 사르트르, 파스칼, 보들레르 등을 다시 만나고 있다고 했다.
파스칼이 “글의 주제는 오로지 하느님이 되어야한다”고 했지만 ‘에세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한 몽테뉴처럼 내가 글의 주체가 되어 하느님과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수녀님은 내 말을 들으면서 대견한 듯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바쁘신지 서둘러 식당을 나와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시고는 아쉬움을 남기고 총총히 길을 떠났다.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 멋진 찻집에라도 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기도할게”라는 말과 함께 뒷모습만 남겨 놓았다. 나는 금방 발을 떼지 못하고, 고민과 꿈과 낭만이 어우러져 있던 젊음의 시간 속에 잠시 서 있었다.

수녀님과 만난 후, 재회의 기쁨과 더불어 대학시절 나의 황량했던 들판이 자꾸 떠올랐다. 혼자 교외로 드라이브를 떠나 가을 들녘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허수아비가 여기저기서 반겼다.
체크무늬 남방에 스포츠 모자를 쓴 젊은 멋쟁이 허수아비, 빨간색 등산복에 등산 모자를 쓴 건강해 보이는 중년의 허수아비, 멋진 신사복에 베레모와 지팡이를 든 영국 신사 같은 허수아비, 월드컵 축구 복을 입은 허수아비, 미니스커트에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걸친 모델 같은 허수아비, 아이들이 만드는 수수깡 허수아비 등이 금빛 벌판을 지키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문득 내 마음 속 허수아비를 그려보았다. 회색 수도복에 흰 베일을 쓴 엉뚱한 발상의 허수아비도 만들어 보았다. 내 삶의 기둥이었고 나를 참새 떼들이 우글거리는 허허벌판에서 지켜주었던 그 아름다운 파수꾼. 저물어가는 이 계절에 나의 들녘에 오셔서 아직도 나를 위해 기도로 참새 떼를 물리쳐 주는군요.
누구나 인생의 들판을 지켜야할 때가 숱하게 많으리라. 나도 마찬가지다. 두 아이가 번갈아 원인 모를 열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여러 밤을 불면증에 시달리게 했던 상념들,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님의 임종, 내 삶의 알곡을 쭉정이로 만드는 욕망의 참새 떼들. 어려운 순간순간들이 내 꿈과 희망과 신앙을 갉아먹었을지라도 쓰러지지 않고 삶의 줄기를 바로세울 수 있었던 것은 회색 수도복의 기도하는 허수아비의 힘 덕분이 아니었을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도 허수아비는 언제나 변함없이 내 마음의 지킴이로 남으리라. 오늘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 며느리, 친정 엄마의 딸이라는 직함으로 내 가정의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의 삶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내 생의 들판에는 크고 작은 참새 떼가 많았다. 이럴 때 내 잠자는 영혼을 다시 한 번 일깨운 허수아비. 훠이 훠이, 참새를 쫓는 묵언의 함성이 환청으로 들린다. 그 음성을 기둥삼아 내 정신의 들판이 황금빛 생명의 물결로 출렁일 수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