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규(子規)의 마음
장금식
남한강의 상류인 서강 한쪽에 섬처럼 떠있는 청령포가 있다. 삼면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숨을 멈춘 듯 잔잔하다. 일렁이지 않는 강물이 죽은 듯하다. 강 이쪽에서 바라보면 그저 솔숲으로 보이나 어린 단종에게는 돌아오지 못하는 섬이 되고 말았다.
통통배에 발보다 마음을 먼저 실었다. 이쪽과 저쪽까지의 거리는 배로 불과 이삼 분이면 된다. 자갈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간다. 촘촘히 박힌 돌멩이 사이에 역사의 자취가 묻어 있다. 꼭 한 번은 오고 싶었던 곳. 문학기행 덕분에 동료 문인들과 함께 청령포에 발을 내디뎠다.
단종이 유배되자 많은 사람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던 이곳.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솔가지가 바람 따라 슬픈 선율을 만들며 역사를 얘기하듯 수런거린다. 솔향기를 맡으며 우리 일행은 먼저 단종이 머물렀다는 어소로 향했다. 왕의 처소를 향해 머리 숙인 소나무 한그루가 한을 안고 죽은 단종의 영혼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불쌍한 임금에게 예를 갖추고 절을 하는 모양새다.
어소로 들어서니 조그마한 방에서 청색 도포를 입고 책을 보는 단종이 밀랍인형으로 앉아 있다. 절망을 넘기고, 이별을 봉하고, 생의 허무를 감당해내기에는 아직 어려 보인다. 정적 속을 떠도는 미세한 바람들이 역사의 회오리와 한을 삭히는 듯하다. 어소를 떠돌던 바람은 유배된 주인이 마음속에 얽혀있는 조각조각의 한을 꿰매고 성숙한 몸짓으로 살아주길 바랐을까. 삶의 허무를 바람의 가락에 맞춰 춤으로라도 풀기를 바랐을까.
어소에서 돌아 나오면 양 쪽으로 갈라진 키 큰 소나무가 있다. 지금은 웅장하지만 그 당시에는 작았을 나무가 어린 왕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출구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영원한 유배자임을, 영원한 떠돌이임을, 영원한 이방인임을 괴로워하였음이 더 컸을 터. 유배를 보낸 자의 이글거리는 욕망이 소나무의 키만큼 솟아 보인다.
단종의 유배 모습을 지켜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하여 관음송이라 불리는 이 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단종의 마음이 되어 정순왕후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써본다.
‘보고 싶은 나의 비(妃)여, 어이 이리 우리 인연이 모질까요. 왕비가 되어 궁에 들어왔을 때는 여느 여인들 못지않게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을 텐데 지아비 역할을 하지 못해 미안하구려. 그대가 나를 만난 탓에 관비까지 되어 고생을 한다는 소리를 바람결에 들었소. 찢어지는 내 마음을 바람이 전해 줄 거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열다섯에 상왕이 된 내가 시절이 하수상하여 이제는 폐위가 되어 첩첩산중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나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르지만 나라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소. 고요와 적막 속에 새 울음마저 끊어진 새벽, 달도 기울고 찬 서리만 옷깃을 적시고 있소. 수양 숙부가 왕위가 탐나서 벌린 일일지언정 혼란한 정국이 수습되어 나라가 하루 빨리 바로 서기만 바랄뿐이오. 수많은 신하가 죽고 피비린내 나는 한양을 생각하니 산속을 헤매는 자규(子規)처럼 내 마음 둘 곳이 없소. 낮이 밤이고 밤도 밤인지라 가슴에 맺힌 이 한을 어이 풀 수 있겠소.
매일 그대를 그리워하며 돌탑을 쌓고 있소. 돌 하나에 애틋함을, 또 하나에 그리움을, 저기 커다란 돌덩이에는 한양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올려놓고 있소. 절벽 아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 가시 밭 길을 어찌 빠져 나갈 수 있는지를 가끔씩 물어보오. 잔잔하기만 한 물결은 묵묵부답이오. 내 하소연을 들어줄 이 아무도 없건만 그대라도 곁에 있다면 죽음의 형벌이라도 가벼울 것이오. 돌탑 위에 굵은 눈물을 쏟아내는 날에는 바람결이 말리고 갈 때도 있소. 이 눈물은 그대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고, 내가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해 나라가 걱정이 되어 흘리는 눈물이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목숨. 나 때문에 그대 목숨도 바람 앞에 등불이오. 사후에서라도 둘이 하나 되어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내 죽어 한이 없겠소. 불의(不義) 앞에 침묵을 지켰든 지키지 않았든 누를 탓 하리오. 야욕과 욕망, 높은 자리를 탐내는 자들도 결국은 삶이 허무한 것임을 깨달을 것이오. 한 줌 자연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꽃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나리오.‘
한양에 있는 정순왕후와 나라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돌로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를 둘러본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물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가 거닐었던 발자국 소리, 두려움에 떨었던 폐왕의 쓸쓸한 그림자를 껴안으며 소나무 숲을 빠져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깔린 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산이 깊어 맹수도/득실거리니/저물기 전에 사립문을/닫노라”던, 어소에 걸린 단종의 시 마지막 구절이 절절한 고독을 전하며 발길을 붙든다.
서강의 물결은 권력의 무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잔잔하다. 창공은 찢어질 듯 푸르다. 솔가지의 선율은 서강 곳곳으로 유유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