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감상

<비밀> 이용옥

율리안나 2015. 11. 6. 00:32

비밀

이용옥

 

겨울 숲은 마른 떡갈나무 몇 잎만 힘겹게 붙잡고 있다. 억새의 무리가 나부낄 때마다 바람이 저쯤 지나고 있으려니 하는 생각이 든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창밖을 바라보는 여인. 실내에 흐르는 첼로음의 악보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다.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박자를 맞춰보다가 자신이 연주하던 기억을 떠올린 듯 입가에 미소를 띠운다. 지휘자인 남편의 손끝을 따라 연주할 땐 그녀 자신이 첼로가 되었고, 힘찬 가락은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부서져 내렸다. 그녀는 그 행복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손발이 굳어가고, 급기야 첼로의 활을 놓게 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병과 함께 발길이 뜸해지던 남편을 다시 볼 수 없었고,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에 가슴은 무너져 내렸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사레처럼 목에 걸려 괴로웠을 뿐….

오펜바흐의 첼로곡〈재클린의 눈물〉을 듣고 있다. 촉망받는 첼리스트에서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으로 절정의 시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던 여인 재클린 뒤 프레. 그녀에 얽힌 이야기만큼이나 음악은 애절하지만 원형 그대로의 슬픔이나 격정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잔잔한 선율에 고른 템포가 추억에 잠긴 듯 감미롭다. 음악과 사랑, 그 모두를 잃어버린 여자가 겪어야 했을 절망과 분노는 어디로 간 걸까. 원망은 세월에 섞여 그것마저 추억이 되어버린 걸까. 그녀의 아픔을 상상하며 듣는 음악이 턱없이 가볍기만 한 것 같아 오히려 내 마음이 무겁다.

눈물 없는 울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물기 사라진 그것의 버스럭거림이 얼마나 깊은 고통인지도 안다. 울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능력 있는 남편에 똑똑한 남매를 둔 그녀는 부러울 것 없어보였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화를 내기도 했고, 고통스런 표정을 짓다가 허둥대며 약을 찾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는 나에게 들려준 그녀의 사연이 애절했다.

단발머리 소녀 시절의 비 오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보니 아버지가 지붕 위의 텔레비젼 안테나를 고치고 있었고, 어머니는 마당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를 부르려던 순간 그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고, 남편을 구하러 지붕 위로 올라간 어머니마저 감전되어 함께 세상을 뜨고 말았다.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사춘기 소녀는 두려움 속에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잠시도 자신을 편하게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즈음, 어이없게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하는 감정과 약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불안에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실컷 울었어야 할 당시에 울 겨를조차 없어 응어리진 것이 병이 되었고, 그 병을 치유하는 처방이 눈물이라는 데 자신은 울 수 없다며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학창 시절 꽤 친한 사이였던 난 그녀의 형편이 그렇게 어려웠다는 것도,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늘 상냥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에 무엇이든 열심히 했기에 성실한 모범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어린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얼마나 깊었으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울음만이 약이라는데 울 수조차 없는 상황…. 이럴 때 인간은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것인가.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버리고 싶을 땐 버리는 그 누군가는 자신이 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눈물조차 구걸하길 바라는 걸까.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웃는 건지 우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빨강 머리의 여인이 커다란 눈 밑에 두 개의 탐스런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 속의 그녀는 왠지 행복한 주인공이 되기에는 서글퍼 보였다. 오히려 엣비식한 미소에는 표현할 수 없는 원망이나 비굴한 애원, 고통의 상처까지도 담겨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교 선언이라도 받은 걸까, 아니면 깊은 고뇌에서 비로소 놓여난 안심의 미소일까. 행복하다는 그 눈물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진주조개는 제 몸에 들어온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끊임없이 분비액을 뿜어내어 그것을 감싼다고 한다. 언젠가 편안한 날이 올 거라는 꿈을 꾸면서. 남는 것은 반짝이는 석회질의 덩어리 하나지만 삶에 대한 본능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제 상처에 진액을 덧바르고 또 바른다.

그림 속 그녀가 행복한 것은 단지 진주조개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제 안의 물기를 끌어 올려 끊임없이 상처를 감싸보려는 진주조개처럼 울음으로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눈물로 고통을 씻어내려는 안간힘, 암울한 현실에서도 생명과 삶을 지켜내는 의지, 그것이 그녀가 행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앨범 재킷에 실린 재클린의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금발을 늘어뜨린 채 주먹 쥔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 고통을 견디고 있는 듯, 감정을 억제하는 듯 무표정한 그녀 모습이 오히려 애처롭다. 그녀의 상처 난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에서 오펜바흐도〈재클린의 눈물〉이란 곡명을 붙였으리라. 그녀와 내 친구의 눈에서 물기가 흐르게 했으면 좋겠다. 아픔 대신 기쁨, 고통 대신 환희의 눈물이 촉촉하게 볼을 타고 흘러 새싹 같은 새살이 돋게 했으면 좋겠다. ‘행복한 눈물’의 그녀처럼. 그림 속 그녀의 눈물은 어쩌면 재클린과 내 친구의 아픔이 심연을 거슬러 올라와 보여주는 승화된 눈물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