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2016년 8월 22일 오후 06:19

율리안나 2016. 8. 22. 18:24

한때 프롤레타리아

정선

프롤레타리아, 라고 적으면
무슨 세균 이름 같아
부르주아, 하고 호명하면
턱시도를 입은 사내의 빠다 냄새가 나지
시아버지의 개념을 나도 찍었어
신분상승은 쉬워서 하도 쉬워서
나는 일만 이천 원짜리 지중해,
그릭 요거트를 즐겨 먹는다
한정식 점심특선 한 끼 값과 맘먹는
청색 도자기에 블루베리를 얹고
s라인으로 도도한 그녀, 그릭 요거트
다리를 꼬고 앉아 시집을 펼친 후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까닥 댄다
라흐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c단조가 힘에 부칠 즈음
우아하게 조금은 얌냠스럽게
도자기 스푼으로 블루베리부터
그리스를 아껴 떠먹는다

이토록 품위를 차리면 아테네 시민 자격증을 얻을까
프롤레타리아의 선장은 항로를 이탈했고
함부로 키를 바람에게 맡겨
카리브해 아드리아해 벵골해 카스피해를 넘나들었지
선원인 나는 이대팔 가르마 포마드길로 질주할 거야
이것은 점점 침몰하는 프롤레타리아호에 관한 현재진형형 기록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메세나폴리스 언덕으로 올라
푸른 깃발을 꽂아볼까

올여름엔 등단 9년 만에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
비로소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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