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19년 [현대수필] 봄호에 신작에세이 <소녀에게 평화를> 발표

율리안나 2019. 3. 19. 18:04

소녀에게 평화를

장금식


소녀는 의자에 앉아 도로를 본다. 옆에 빈 의자도 하나 있다. 오른쪽에는 고층건물 영화관이, 왼쪽에는 구민회관이 있다. 양쪽 건물의 위엄 때문인지 소녀는 작고 외로워 보인다. 바람 한 점 불어도 흔들리고 스러질 것 같다. 화려한 가로등 불빛을 애써 외면한다. 소녀의 조각상이 그 앞을 지나가는 내 발걸음을 붙든다.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이다.

가지런히 빗은 단발머리는 단아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각진 듯 동글한 얼굴은 비장함보다 숭고함이 묻어나는, 연약한 여인의 모습이다. 두 손은 주먹을 꼭 쥔 채 무릎 위에 얹혀있다. 혹한의 비바람에 장갑도 없이 맨손이다. 두 발은 어떤가. 뒤꿈치를 들고 있어 불안한 잔상이다. 왼쪽 어깨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흩날리는 꽃잎 하나 내려앉은 것 같다. 엄동설한에 핀 꽃이 낙화된 삶을 주어 올리고자하는, 한 서린 모습이랄까. 오랫동안 잠긴 시간을 풀어내듯 날개 짓을 하려나. 새 희망을 찾아 가는 비상이 되면 좋으련만 오욕의 역사가 기억하기 싫은 무게를 더 무겁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현재 스물다섯 분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남은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일 과거사가 정리되고 그분들의 인권을 찾아드려야 할 텐데…. 소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오래 전에 TV에서 보았던 ‘훈 할머니’가 비친다. 할머니의 삶을 조명한『버려진 조선의 처녀들』이란 제목을 달고 책도 나왔다. 마산 시골 어딘가에서 쑥을 캐다 일본인에게 잡혀간 것이 질곡어린 삶의 시작이었다.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이남이’가 일본군 위안부로 지내다가, 한 일본인 장교의 아내로 ‘하나코’란 이름을 얻고 살았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자 장교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나 딸아이와 둘이 삶을 전전긍긍했다. 생존을 위해 다시 캄보디아인과 결혼해서 ‘훈’으로 살다, 마지막 여생을 딸과 외손녀들과 살기까지. ‘이남이, 하나코, 훈’의 이름을 거쳐 진짜 이름 ‘이남이’를 찾기까지. “강자의 역사에서 인생을 저당 잡힌 한 여인의 구부정한” 생지옥 같은 일대기가 담긴 책이다.

캄보디아에서 우연히 훈 할머니의 손녀를 만난 한국인이 없었더라면 국내에 사연이 알려지지도 않았을 텐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연이 알려지고 한국으로 영구히 귀국했으나 결국 캄보디아에 남겨진 가족을 못 잊어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 생을 마감했다.

약소국으로 강대국에게 당한 치욕은 역사 속에서 또 찾아볼 수 있다. 원나라에 팔려 간 고려 여인들이다. 원나라에 공공연히 바쳐진 인간 공물로서의 공녀들은 하층민 출신만이 아니라 귀족의 여식들도 포함되었다. 드라마에서 본 ‘기황후’처럼 원나라 궁전의 황후가 되어 나라를 좌지우지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하녀나 귀족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 기생으로 팔려가 거리의 여인이 되기도. 갑자기 사라진 자식생각으로 밤낮 통곡하며 평생을 보내야만 하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 영문도 모르고 이국 만 리에서 헤매야 하는 어린소녀들, 끌려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들. 그들의 고통은 생각만 해도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유린과 만행을 당하고만 있어야했던 그 시대. 생각할수록 가슴이 부들거린다.

어둠속 외진 곳에 움츠리고 핀 핏빛 머금은 꽃잎 같은 삶들이다. 소녀상 위로 아직도 겨울비가 내린다. 부서진 삶을 위로하듯 겨울비에는 슬픈 선율이 흐른다. 한 인간으로서 독립된 삶을 누릴 권한,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한, 조국이 없는 인간의 비애,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함성이 계속 빗소리에 섞인다. 바닥없는 삶을 확인이라도 하듯, 억울한 삶의 번뇌를 씻어주는 춤사위라도 되듯, 가로등 불빛은 연신 너울거린다.

억압과 강제를 이기고 시대의 어둠을 인내한, 약소국 여인들의 그 실상을 위안해주어야 할 오늘날이다. 거짓으로 덮고 사실을 왜곡하려고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 손바닥으로 역사를 가리려 하는 일본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성을 담아 사과와 보상할 것을 왜 거부하는가. 역사의 비망록을 펼치고 이제 더 큰 목소리로 그분들과 함께 하며 일본과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이 많지만 국민적 관심을 못 받는 것 같아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했던 그때의 조국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횡포 아래 약소국의 비참한 당시의 현실은 그야말로 치욕중의 치욕. 위안부의 실상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누군가가 차가운 소녀상에 머플러를 두르고 모자를 씌웠다. 수많은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간다. 소녀의 발아래 고인 빗물이 출렁거린다. 몰아치는 삭풍을 머플러와 모자로만 견디기는 역부족이다. 위안부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마음을 모아 혹한을 막아드리고 하루빨리 소녀에게 평화를 안겨줘야 하지 않을까.

소녀는 모래와 돌조각 무성한 거친 황야를 거쳐 왔다. 울타리 저쪽 너머 친숙하지 않은, 무분별한 잡초들의 만행이 소녀에게 비바람을 휘몰아쳤다. 기약 없이 강제된, 가냘픈 울분이 피아彼我의 경계 없이 숨죽이게 했다. 지금, 모래 무덤처럼 부풀어 올랐던, 뭉개지고 바스러진 그 역사의 비극을 흔적 없이 씻어 주려는 듯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