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너를 위하여
장금식
순식간의 일이었다. 파도가 너를 앗아가 버렸다. 나의 분신이자 생명과 같은 존재였는데 어쩌나. 지금쯤 바다 어디쯤에서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을까.
아, 녀석과 이별한 적이 또 있었다. 몇 년 전, 외국의 한 야생공원에 갔을 때 나무 꼭대기에서 놀던 원숭이 한 마리가 폴짝 뛰어내려 심술궂게 녀석을 낚아챘지. 바다도 동물도 네가 탐났나보다. 그래도 나만큼이야 아낄까. ‘너 없는 나는 청맹과니’나 다름없지. 남편보다도 너와 한 몸으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거늘, 저 거센 물결에 휩쓸려 상처를 입거나 불구의 몸이 되지나 않을지.
불안한 내 마음을 부추기듯, 파도는 연신 갯바위를 두드리고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흩트리고 있어. 해변에 울려 퍼지던 음악은 바람의 기세에 눌려 소리가 잦아들고, 날아갈 듯 펄럭이는 파라솔 밑에서 호객하는 상인의 목소리가 바람에 갈라지고 있어.
너를 지키지 못한 부실함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만의 심정일까. 너는 진즉부터 자유가 그리웠을지도 몰라. 어쩌면 지금 내게서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하며 파도와 너울너울 얼크러져 춤사위를 즐길지도 몰라. 그러나 자유엔 늘 대가가 따르는 법. 출렁이는 바다에서 낯선 존재들과 만나면서 이방의 시선과 맞닥뜨리는 어려움도 겪어야 할 거야.
나는 지금 해변에 앉아 네가 만날 존재들을 상상해. ‘파란색 앵무새 물고기’를 만났다고? 몸에 온통 푸른색을 띠고 있으니 너를 청안한 눈으로 바라봐줄까. 언제나 너를 청안시로 대하는 친구가 곁에 있으면 큰 힘이 되지. 네가 깊은 해저에서 위험한 존재들과 부딪히지 않게 길을 잘 안내해주면 좋겠네.
몸이 하얀 어종들은 마음도 백옥일까. ‘넌 우리와 다르니까 저리 가.’ 레이저 눈빛을 쏘며 백안시하진 않을까. 그렇다고 그 눈빛에 질려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진 말아. 한번 심연으로 가라앉으면 다시 솟구쳐 오르기가 쉽지 않거든.
아예 무관심하게, 있어도 없는 듯 등 돌리며 등한시하는 녀석들도 있겠지. 뾰족 가시가 달린 성게나 별처럼 생긴 불가사리에 찔려도 도움은커녕 ‘너 우리 동네에서 얼쩡거리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냉혈 패거리도 있겠지.
바다 속이라고 서열이나 갑 질, 텃세가 없겠니. 곁에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자기일 아니면 모르는 척 도외시하거나, 오히려 깔보고 업신여기며 경시하는 족속들이 인간 세상에만 있겠니. 네가 인간들에게 베푼 헌신의 가치를 그들은 알 수가 없지. 안다한들 인정하려들지도 않아. 가자미족처럼 눈을 가늘게 모아 뜨고 흘겨보면서 ‘흥. 그래봤자 넌 신입 초짜야.’라고 일부러 무시하지 않으면 다행이야. 시선의 스펙트럼은 각양각색, 왜곡의 파동은 나열하기도 역부족이야. 거기도 기선잡기 대장이 있을까. 마음에 완장을 찬 채 ‘하찮은 게 뭘 아느냐.’고 교만하게 아래위를 훑어보며 멸시도 하겠지. 네가 천시당하거나 괄시라도 받으면 어쩌니.
시선은 생각의 지배를 받기마련이야. 누가 뭐라든지 의연하게 대처하면 돼. 네가 없으니 외부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도 제로상태가 되어가네. 뇌도 고요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아. 잠시 잡념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런데 내가 여태껏 무얼 본 거지? 청안시 하나만 빼고는 온통 부정적인 시선뿐이잖아. 살아가면서 그만큼 나쁜 시선과 더 많이 부딪혔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의 착시일지도 몰라. 세상을 더 밝게 보려고 너와 한 몸이 되었는데 잡티부터 봤나봐.
바닷물은 아직 쪽빛이고 하늘도 그대로 비춰. 너를 찾으려면 해저지도라도 펴놓고 보물찾기를 해야 할까. 그러나 그것도 생각뿐이야. 바닷가를 지나는 사람들이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두리번거리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봐. 저들의 마음엔 어떤 시선이 담겨 있을까.
나는 안경을 잃었다. 사물이 겹쳐 보이는 바닷가에 서서 인간사의 바다를 연상하면서, 진정한 시선에 대하여 생각한다. 남편은 녀석을 찾느라 아직도 해수 속에서 자맥질을 한다.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눈앞이 어질어질 흐릿하다. 그만 찾고 빨리 나오라고 소리쳐본다. 남편이 나오면 얼른 낙산해변 근처에 있는 안경점부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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