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숲
장금식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다. 휭휭, 거센 바람이 나무들을 온통 잿빛 안개로 휘감고 꽤 몸집이 큰 가지들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태풍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 했는가. 거친 바람을 용케도 견뎌낸 나무들이 또다시 온몸으로 버티고 있다.
정동진에 있는 괘방 산,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지금 내가 걷는 이 숲길은 을씨년스럽기 한량없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숲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없이 길을 나선 게 탈이다. 앞서가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산길로 5시간 코스란다. 오후 2시 정동진에서 출발하여 조금 지난 곳에서 ‘안보 7지점, 삼우 봉 5km’라고 쓰인 팻말을 보았지만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바람이 길을 막는 것이다. 하산지점인 안인 항까지는 9.2km를 가야한단다. 어쩌지, 다시 내려가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전진이 최선책이다.
해 지기 전에 완주하지 못할 두려움과 초조함에 외로움까지 겹치지만 한 발짝 한 발짝 바람과 맞서며 산등성이를 오른다. 다리를 시간에 맡기고 묵언수행 하듯, 걷고 또 걷는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태풍이 남긴 흔적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가지를 부러뜨린 채 옆으로 누워 있는 나무도 눈에 띈다.
지난 태풍에 사람들도 저렇게 쓰러졌다. 삶이 뿌리째 흔들렸다. 한 노인은 지붕이 날아가는 걸 막으려다 추락하여 저 나무처럼 몸이 꺾인 채 고생하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젊은 시절 부인을 잃고 세상풍파를 견뎌내며 여섯 남매를 온전히 길러내신 분이다. 박토에서 살아가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삶이었다.
저 나무들은 어떻게 모진 바람을 견디며 긴 세월 살아왔을까. 꺾인 가지 사이로 푸른 순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지 않은가. 할아버지가 힘든 중에도 푸르게 키워낸 자식들의 모습이었다. 나무는 쓰러져도 그 뿌리는 세상의 숲을 일궈낸다. 바람은 나무를 키우기도 하고 쓰러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정도 바람쯤이야 견딜만하다. 인간사 마음먹기 나름인가. 생각을 달리하니 몸도 정신을 따른다. 한참을 걸으니 흙냄새와 청량감이 서서히 스며들고 땀이 몸을 적신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아, 상상하지 못했던 바닷길이 숲길 저 아래서 장관을 펼친다. 검은 구름도 때마침 태양 뒤로 숨고 온 산이 훤해진다. 숲이 새로운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불안했던 마음은 어느새 환희로 바뀌고 나는 숲과 오롯이 하나가 된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숲은 마술사다. 괘방 산을 탈출하고 싶었던 불안감이 서서히 상쾌한 희망으로 바뀌니 또 다른 노인이 떠오른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주인공, 엘지아르 부피에다. 알프스의 고지 마을에서 숯을 구우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늘 불어대는 바람과 척박한 땅 때문에 희망을 잃고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다. 성당의 종탑은 무너지고 집들은 뼈대만 남았다. 프로방스, 베르됭 계곡의 물도 마르고 인적조차 없는 이 마을에서 노인은 땅을 살려보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홀로 광활한 햇빛과 씨름하며 묵묵히 참나무와 너도밤나무, 자작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나무가 없어 땅이 죽었다’며 도토리 10만개를 땅에 꽂았다. 그 중 2만 개가 싹이 트고 1만 개는 다람쥐의 먹이가 되고 결국 1만 그루가 살아남았다. 노인이 30년간 그 계곡을 지키며 나무를 심은 덕분에 수십 만 그루의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죽었던 마을이 되살아나고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왔다. 메말랐던 샘물이 솟아나고 새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부피에 덕분에 오늘날 베르됭 계곡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사람들을 부른다. 한 인간의 자연애와 숲이 일궈낸 힘이다. 바람 거세던 황무지는 그 힘으로 생명의 숲이 되었다. 새삼 푸른 숲의 푸름을 푸르게 느낀다.
괘방 산의 숲길에서도 남은 잎들이 대지에 말을 건다. 숲은 해마다 다시 살아나 울창한 생명으로 속삭일 것이다. 바람이 잦아들면서 하늘과 땅도 온순해지는 듯하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화음을 이룬다.
산에서 숲길을 걷기란, 고됨과 고독을 즐기는 자들이 누리는 행운이다. 돌길과 자갈길 앞에서도 멈춤 없이 발길을 내딛으며 대화하는 부드러움이다. 가슴을 누르는 묵직한 바위 위에 티티새 한 마리 불러오는 여유다. 나무 사이에 숨은 햇살과 숨바꼭질하기다. 철따라 색을 바꾸는 울창한 숲에서 분홍빛과 하양을 머금은 자운영, 짙은 하늘색 제비고깔, 황금빛 머금은 샛노란 금계 국, 빨간 아네모네 등, 꽃들을 만나는 행복이다.
고독한 숲은 침묵의 정글이 아니다. 인간에게 무언의 말씀을 전하는 사유의 꽃밭이다. 자갈돌 사이에도 꽃을 피우는 믿음의 영토다. 나는 하산 길에 바람과 숲, 인간과 숲을 생각하며 동화 속 화자인 ‘나’가 한 마지막 말을 새겨보았다.
“자신의 영혼과 몸밖에 없던 한 남자가 황량한 대지를 약속의 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생각하면 그의 인생은 너무나 멋진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그의 신념과 인내, 그리고 아낌없는 영혼을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은 존경심으로 가득 차오른다. 신만이 해 낼 수 있는 것을 그는 스스로 해 냈던 것이다.”
나는 자연의 숲을 떠나 다시 도시의 숲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 바람의 숲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도 늘 바람이 분다. 미풍, 훈풍, 태풍에 누군가는 몸을 일으키고 누군가는 쓰러진다. 또 누군가는 제 안에 나무를 심어 박토를 옥토로 일군다. 비록 바람이 불지라도, 가지가 꺾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그루의 나무로 생명력을 키우고 숲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면 더욱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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