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22년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

율리안나 2024. 1. 11. 01:12

<, 혹 없애기>

장금식

 

랫 레이스 (rat race,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쥐 한 마리가 말없이 치즈를 독식하네. 눈치 없이 폭풍 흡입은 흔들림이 없어. 배를 가득 채운 고 녀석. 양 볼이 통통, 만면에 기름기 졸졸, 두 귀는 쫑긋, 배가 빵빵, 가는 꼬리까지도 빈틈없이 부피를 늘렸어. 조용하던 세상에 거침없이 뉴스를 뚫고 나온 관종 중의 관심종. 레이스가 치열했는지 느슨했는지 봐주기식이었는지는 모르는 일.

속임수로 이긴 승자는 하나요, 패자는 다수. 그중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녀석들이 여기저기 아우성이네. 뭔가 기회균등이 턱없이 부족한 듯 갈그락 갈그락분노를 갉아대는 루저, 과정의 공정함이 대책 없이 미흡하다며 정당함과 맞설 양 우다다다뛰어다니는 루저. 결과가 정의롭지 않아 억울한지 찍찍찍찍쉼 없이 울어대는 루저. 근거 없이, 뒷받침없이, 두리뭉실 엮어낸 점수라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거짓이 판치는 세상, 가짜뉴스로 희생된 감기 걸린 물고기가 생각나네. 배고픈 아귀가 다른 종의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맨 처음 빨간 물고기를 표적으로 삼았지. 색깔이 빨간 것은 감기 때문이라고, 열이나 그렇다며 가짜뉴스를 퍼뜨리기 시작했어. 결국, 빨간 물고기들은 기피 대상이 되고, 따돌림당하다 무리에서 쫓겨나 아귀의 밥이 되었지. 그런 식으로 노란 물고기는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노랗고, 파란 물고기는 한기가 들면 으스스해져 그렇다고 하면서 이 물고기 저 물고기를 다 잡아먹었지. 불안과 초조로 안절부절, 거짓선동에 휘둘려 똘똘 뭉치던 물고기들도 어쩔 수 없이, 소신 없이 하나둘씩 부화뇌동하기 시작했어. 어라! 시간이 지날수록 진위와 상관없이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버리네. 그 참! 물고기 세상에서도 가짜뉴스가 거리낌 없이 먹혀드네.

어디나 가짜가 있는 법, 남 얘기가 아니야. 우리가 빨갛게 열이 나 달리지 못한 것도 아닌데 분명히 이번 레이스에서 아귀 같은 놈의 속임수와 선동이 판쳤을지도 몰라. 그도 그럴만한 게 최후 승자는 신체적 조건으론 터무니없이 불리했어. 틀림없이 권력자의 후광효과가 분명해. 혈연이나 가족의 힘을 빌려 각각 승자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파다해. 권력이라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엔 문제없어. 무엇이든 쉽게 위조도 할 수 있다고 하잖아. 우리 같은 흙수저는 문서가 구겨지기만 해도 불법인 줄 알고 전전긍긍하는데 금수저들 세상은 종이도 황금일 수 있어. 문서 위조보다 초시계 하나로 기록 위조는 더 쉬울 거잖아. 아마 약육강식의 논리도 한몫했을 거야, 근거 없이 이런 말 하는 건 아니야. 루저 하나가 끈질기게 뒤를 캔 모양이야.

정의롭지 못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랫 사회로 가는 길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는데. 이참에 물고기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아 3(불평등, 불공정, 불의)의 낌새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이에 맞설 조항이라도 만들어야 하고말고. 없이 붙어 다니는 , 이 혹을 없애야 하는데!

랫 공화국이 점점 타락하고 있는 건 분명해. 거짓과 위조, 투명성 결여, 무엇보다 문서와 기록 위조는 어김없이 나라 근간을 흔드는 문제잖아. 이보다 죄질이 나쁜 것도 찾기 힘들 게야. 지도층을 믿을 수가 없어. 왕국 발전을 위해 틀린 것을 바로잡을 생각은 뒷전이고 이 난국에도 어이없이 네 편 내 편, 편 가르기에만 몰두하니 또다시 감기 걸린 물고기가 생각나네. 거짓 바이러스에 속지 않고 함께 죽고 함께 산다는 뭉치기작전을 굳게 지켰다면 아귀 밥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또다시 고양이 밥이 될 수 있겠어.

한때, 고양이가 몹시 두려웠던 때가 있었지. 늘 잡아 먹힐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배짱 두둑한 한 녀석이 앞장서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며 힘을 모았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의도는 가상했으나 유례없이 핍박을 당했어. 그래도 은근과 끈기로 시도한 결과 수행할 방도가 없다는, 방울 달기의 헛된 공론도 성사시킨 게 우리였어. 목숨 걸고 투쟁한 덕이었지. 묘두현령猫頭縣鈴이 신통방통한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였으나 슬쩍 꼬리 내린 쥐들은 없었어. 당시엔 모두 변함없이 순수하고 정의로웠어. 그런데 말이야, 이제 초심을 잃고 말았어. 방울도 달았겠다, 두려움과 배고픔도 옛말이 되었겠다, 지도층에겐 부족함 없이 아쉬운 게 없는 왕국이 되었단 말이지. 순수한 의도로 투쟁했던 투사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그 힘을 받침 삼아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바닥에 깔고 아방궁을 지으려고 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부패해 가기 시작해.

대왕 쥐의 부하들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도, 윤리의식도 실종되었을까 봐 걱정이 태산이야. 아무리 질이 나쁜 죄를 저질러도 자기편 판사 잘 만나 무죄선고를 받으면 차질없이 범법자가 영웅이 되는 세상, 말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실제 생활은 탈법과 법 악용,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도 대왕 쥐의 말 한마디면 정의로운 사람으로 둔갑하는 세상. 민초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 허탈감을 어디다 숨기지. 금이 간 벽을 찾기도 힘드네.

공정한 레이스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야. 날마다 취업서류를 제출해도 다 정해놓고 뽑는지, 힘센 자의 위조 때문인지, 돈도 백도 없고 흑 수저 부모를 가진 팔팔한 젊은 쥐들이 소리 없이 풀이 죽은 지 오래야. 언제쯤 불평등, 불공정, 불의없이 레이스를 하고 의심 없이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나만 배부르면 돼, 왜들 난리야식이 몸에 밴 기득권의 , , 을 떼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해.

여기저기 배고픈 루저들은 아직도 아우성을 쳐. 저 아이들은 어떻게 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지? 동물의 왕 사자도 울고 가겠어. 우리는 배가 고파. 우리의 바람은 아무 조건 없이 배가 부르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희망이지. 배만 채우면 행복하고 밤에도 꿀잠을 잘 수 있겠어. 단순한 우리 삶의 근본인 먹이가 없다니 서글프기 짝이 없어. 의심과 부러움, 서러움과 초라함, 씁쓸함으로 잠이 안 와. 죄 없이 충혈된 눈만 비비대. 빨개진 눈을 비빌수록 의심 가는 곳이 눈덩이처럼 부어오르지만 이젠 지치고 힘이 빠져 레이스에 참가할 서류작성도 힘들어.

루저의 삶엔 비애만 가득할 뿐. 출생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쥐새끼들을 흙수저인 우리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어불성설,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야.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세상, 그저 황금빛 치즈를 독식하는 쥐새끼 꼬리라도 붙잡아야 하나.

 

인간 세상은 어떤지 은근슬쩍 궁금해지네. 그쪽도 이 난무한 세상일까! 준결승, 결승전을 위한 서류준비의 기회라도 획득할 수 있을까. ‘의 긴 터널에서 더 잔인한 맛을 보게 될까. 휑한 바람이 한 줌도 안 되는 내 몸을 휙 훑고 지나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