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23년, [계간수필] 겨울호 <'고'에 대한 단상>

율리안나 2023. 12. 21. 15:48

‘고’에 대한 단상

 

비어있던 소파가 꽉 찬다. 식탁은 후줄근하고 추레하다. 신문과 어수선하게 놓인 우편물의 한숨 소리가 짙다.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와 과일 조각이 들어오다 만 햇살에 그림자를 지운다. 식구들 발걸음에 묻어온 젖은 먼지가 찐득거린다. 좁힌 미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알리라고, 알릴‘고告’자를 내민다.
지루한 일상에 침잠해온 감정들. 심심, 답답, 힘듦, 낙담, 갑갑함, 불편함 등이 고개를 쳐든다. 무수한 생각들이 또 다른‘고考’에 곁가지를 친다. 그동안 비자발적 억압의 결과에서 온 굳어진‘고固’가 참다못해 감정해체를 호소한다. 융통성 없는 완고함, 딱딱함, 억눌린 상태가 한꺼번에 풀리도록 물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창밖의 사람 쪽으로 기웃거린다. 안개 같기도 하고 이슬 같기도 한 는개 가 내린다. 빗줄기라 할 것도 안되는 가는 비를 센다. 셀수록 지루함을 씻어내리고 싶다. 기분전환, 권태감 탈피는 욕망이고 본능인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왜 밖으로 달음질하려는가. 안개와 이슬 사이처럼 감정도 묘하다. 괴로울‘고苦’를 느끼다가 슬픈 것 같고, 외로울‘고孤’의 싹이 내민 것 같으나 우울한 것 같은, 교차도 아닌 묘한 감정이 제각각 고개를 갸웃거린다. ‘고고苦孤’의 슬픈 몸짓이다. 나가지 않아 죽을 것 같으니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도 감수해야겠다.
집 안에서의 기본적인 욕구, 먹고 자는 일 외에 힘이 되는 중심을 잃었다. 도서관도 성당도 함께 섧다. 의도적 열망마저 차단되어 악착같이 뭔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옛‘고古’로 물러났다. 침대와 소파만 붙들고 있다. 삶의 뚜렷한 목표의식을 견고하게 받쳐주었던 푸르름이 퇴색됐다.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은 푸르죽죽한 멍울로 울먹거린다. 벽 쪽으로 세게 밀어붙이며 내 안의 벽을 또 하나 만들 뿐. 삐걱거리는 침대조차 기운 없이 숨을 죽인다. 벽에서 높을‘고高’자가 나를 무심히 내려본다. 지인들의 sns 피드를 살피거나 평소 즐겨보던 유튜버 검색도 관심 밖이다. 오로지 무기력, 무료함에서 오는 우울감, 깊이깊이 저 아래 어디쯤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혼자라는 감정뿐이다. 먹먹한 감정, 극복보단 수용. 우울의 벽을 잡고 간간이 몸을 일으켜 우울의 일상에 발맞춰야 할지 의문이다. 이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연고‘고故’에 물어볼 겸 떠날 용기를 내, 길 위에 올라타야겠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정동진행 ktx를 탔다. 차창으로 비치는 풍경과 스며드는 소리가 화들짝 반갑다가 금세 그 어떤 것도 넘어오지 못하게 잠가버리고 싶다. 차창 밖에는 아직도 는개가 내린다. 가슴을 적신다. 뿌옇다가 다시 가볍게 몸을 적실듯한 이 물기를 말려야 할지 그냥 있어야 할지, 감정의 무경계 속에서 시간은 쉼 없이 너울거린다. 정동진역이다.
곧바로 해변으로 간다. 모래사장에 설치된 흔들 그네는 알록달록 나를 반긴다. 드넓은 해변에 파라솔 꽃이 피었다. 간격을 맞춰 손짓한다. 참새 몇 마리가 모래 위를 선회하다 짹짹거린다. 바다에 크고 작은 바위가 우뚝 솟았다. 먼바다엔 아직도 희미하나마 해가 지나간 자국이 불그스레하다. 파도가 철썩, 갈매기는 끼룩, 까치도 깍깍, 협주에 힘을 보탠다. 비틀거리던 내 감정은 자연의 소리가 얹혀 조금씩 질서를 찾아간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배 모양의 호텔이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멋있는 호텔에 대한 로망을 꿈꾼 적이 있으나 퀴퀴하고 곰팡내 나는 호텔이면 어떠냐 싶다.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평가 기준은 마음이다. 큰 바위든 작은 바위든 파도를 맞이하는 주인이고 객이다. 큰 새든 작은 새든 공중이 제집이다. 오늘 저녁 어떤 숙소를 정할지 고민거리가 아니다. 안절부절 모호했던 감정선이 대자연 앞에서 점점 경계가 분명해지고 무료한 세포는 조금씩 물기를 빨아들인다. 자잘하고 흩어진 감정의 품을, 살‘고雇’에 값을 치렀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백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바위 하나에 앉는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돌아볼‘고顧’도 그 바위에 앉힌다. 회고하기에 딱 좋은 자리다. 파도가 스친 자리라 축축하다. 다시 일어나 엉덩이를 툴툴 털기 전에 열차 한 대가 기적소리를 낸다. 세상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 이곳 정동진역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하얀 부표가 시선을 붙든다. 물에 잠기고 바다에 비친 널찍한 돌들. 모양도 울퉁불퉁 각양각색, 거무스름함이 옥빛 물빛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파도는 붓이다. 저 치솟는 듯한 격렬한 물살로 쓸어내리고 덧입히면 숯덩이 같은 감정이 물보라로 잘게 부서질까. 벽과 한 몸이었던 내 모습, 내면을 새롭게 그린다. 암울했던 나를 밝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관계로 그린다.
파도는 쉬지 않고 나를 백사장 쪽으로 밀어낸다. 더 밀리기 전에 백사장으로 나가는 게 낫겠다. 축축하지 않은 모래알이 발가락에 붙는다.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햇살이 뻗친다. 큰 바위가 부서지고 으깨 지면 이런 모래가 되겠지. 그 모래도 다시 살아 숨 쉬며 언젠가 누군가의 힘이 되리라. 강한 언어는 부드러워지고 격한 감정의 때는 씻겨지고, 세월과 자연은 순리에 한결 순응하리라. 바다의 보고는 어느덧 내 마음속 창고의 ‘고庫’가 되었다.
눈앞의 바다 갈매기, 인간이 떨어트린 부스러기를 줍는다. 나에게 힐끔 눈을 돌린다. 부리를 쪼다가 작은 것 하나 입으로 넣는다. 애써 모은 먹이가 자꾸 입으로 들어간다. 내가 꼬깃꼬깃 담아두었던 이야기 또한 갈매기 몸짓과 비슷하다. 그저 그러한 것들이 삶의 하나인 것을 왜 그리 아파하며 우울했던가. 텅 빈 주머니엔 곧 권태 대신 무언가 창조적인 행위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비었을 때 비로소 비움을 알고 공에서 얻게 될 깨달음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또다시 는개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숙소를 찾아간다. 웽웽거리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두께를 가늠할 수 없던, 벽만 붙잡고 있던, 그런 감정의 비등을 씻어낸다. 비는 눈물이요, 눈물은 씻김의 도구다. ‘고鼓’를 메고 북 치며 한바탕 씻김굿이라도 할까 보다. 새들이 여름 바다를 즐기며 미리 추임새를 두드린다. 두드릴 ‘고叩’의 몸짓이 현란하다. 큰 소리로 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