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레시피
장금식
꽃이 한창인 계절, 꽃바람 따라 마음도 살랑인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창문을 열고 앞산을 바라본다. 이팝나무꽃이 소복이 피었다. 마치 연둣빛 종이에 빼곡히 적힌 흰 글자 같다. 나에게 뭔가를 말하는 듯하다. 곧 흩날려 땅으로 내려앉을까 봐 조급해진다. 봄을 타는지 몸과 마음이 나른하다. 정신도 출출하다. 허기진 영혼을 채우려 무엇이라도 먹어야겠다. 영혼이 그득해지면 꽃의 말도 해독할 수 있으려나. 꽃으로 요리해볼까.
오늘의 메뉴는 ‘꽃 글을 요리하다’이다. 영혼의 무게만큼 이팝나무꽃을 머릿속에 장착한다. 요리의 주재료다. 재료 선택은 요리할 사람과의 첫 대면이자 얼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요리의 생명이기도 하다. 이팝나무꽃이라는 재료로 밋밋함을 벗어나 오래 여운이 남게 하려면 어떻게 요리해 그릇에 담아낼까가 관건이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요리의 세계화도 생각해볼 일이다.
글에 들어갈 원뿌리 재료와 이팝나무꽃 요리 방법을 메모장에 적어보자. 원고지 20g, 말하듯 썰어내는 문장 1/2스푼, 보여주기식 도마질 1/2, 눈이 부셔 눈이 감길 때까지 이팝나무꽃 바라보기, 새파랗고 심장을 뛰게 하는, 상상력을 동원한 입체적 사유 무한대 펼치기. 꽃의 말, 난해한 그 의미 알아내기. 맹숭맹숭한 맛을 탈피하되 진솔한 맛을 잃지 않게 인공 조미료 쓰지 않기. 이팝나무꽃에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리고, 인생의 깊이와 넓이로 양념하기. 문학적 용어와 시적 언어로 밑 간을 하고, 냄비 속에서 곰 삭이기. 100번 이상 퇴고, 라는 고명을 얹어 글자 요리 완성하기. 완성 후엔 달아난 입맛을 불러들일 만하고 요리에 걸맞은 접시에 담기다.
자, 이제 재료의 품질을 점검해볼까. 불순물이 섞였는지, 터무니없이 외래종은 아닌지, 고귀한 영혼의 양식이 될만한 것인지 세밀하게 따진다. 토종 감성을 골라낸다. 갈색 뼈대와 초록 이파리, 그 무성한 꽃잎들이 곧 다른 색을 입은 문장으로 피어나리라. 이팝나무꽃같이 환한 빛, 그리고 향이 멀리 퍼져나가 누구든 향을 맡고 맛을 보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해보자. 글자가 될 꽃잎을 도마 위에 놓는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소분하고 잘게 썬다. 머리, 몸통, 꼬리 부분으로 나눈다. 머리 부분을 잘못 나눠 몸통을 침범하거나, 몸통이 꼬리 부분을 넘보거나 꼬리 부분의 영역을 과다하게 허용하면 안 되겠지. 머리 부분은 메뉴의 첫인상이니만큼 당연히 뭇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하리라. 몸통은 이팝나무꽃 요리를 전개하며 이런저런 사유를 통해 요리사가 무얼 얻었는지 드러나도록 보여줘야 하겠지. 꼬리 부분은 음식을 맛본 사람들이 또다시 주문하게끔 여운을 남기면 좋겠다 싶다.
칼질의 강약도 중요하다. 너무 깊거나 얕으면 백발백중 실패작이다. 지나치게 감정이 들어가면 칼이 삐끗, 엇나가며 본질을 잃게 되고, 허우대는 좋으나 약체인 사람처럼 문장의 힘을 잃을 수 있다. 맵거나 시큼한 맛으로 무슨 맛인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요리사가 먼저 눈물을 뺄 수 있다. 감정이 얕고 지나치게 절제하면 싱거울 수도 있다. 글자가 남긴 오목한 음각, 볼록하게 드러난 양각의 의미까지 놓쳐선 안 된다. 음각과 양각에 스며든 이면의 의미, 행간의 뜻을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히 다룬다.
소분한 글자를 냄비에 넣는다. 푹 익히고 삶는다. 글자가 진하게 우러날 때까지 계속 끓인다. 머리, 몸통, 꼬리 형태가 남되 내용물은 녹아들도록. 전기레인지 앞에서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주걱을 들고 냄비 속 글자들을 이리저리 굴린다. 머리를 잡으면 글귀들이 요리조리 미끄러져 나가고, 몸통은 더 쉽게 잡히지 않아 주걱을 휘휘 젓다가 헛손질로 끝나기도 한다. 또다시 포착을 위해 애를 써보나 잡힐 듯 도망가 결국 잡히지 않는다. 꼬리에 온 힘을 다해 초점을 맞춰본다. 그것 역시 미꾸라지처럼 달아나고 ‘나 좀 잡아봐라’ 하고 놀리듯 애간장만 태우게 한다. 편식하는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기는커녕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팝나무꽃이여, 나에게 오라’ 하며 실패를 거듭해도 포기는 없다는 정신으로 시도한 결과, 무언가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꽃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아낼 묘안이 어떤 형태로 완성될까. 보이지 않는 냄비 속 꽃들을 보이고 맛보게 하는 언어 마법을 그림으로 그려내 주면 좋겠다. 꽃의 모습, 이미지화! ‘꽃이 아름답고 천사같이 와 닿았다’고 수천 번의 말보다 멋진 요리 하나를 떡 하니 내보이는 거다. 요리가 완성될 즈음, 냄비 뚜껑이 덜컹덜컹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뚜껑을 연다.
단어와 문장의 골격이 남아있고 군살은 빠졌다. 근육이 붙은 듯 새로운 형상을 선보였다. 요리조리 뒤적이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떤 풍미를 품었는지 가늠해본다. 이팝나무꽃에 대해 비유와 묘사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꽃의 존재를 사색적으로 탐구한 듯 명상적인 글맛도 좀 난다. 꽃이 주는 치유의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에다 주안점을 더 둘까를 잠시 고민하다 ‘꽃의 말 해독’이라는 질문에 초첨을 맞추는 게 본질을 흐리지 않을 것 같아 ‘해독’이라는 양념 한 스푼을 추가한다. 알싸한 맛을 느끼며 술술 넘어가는 맛이 나오려니 하고, 다시 뚜껑을 닫고 기다린다.
요리를 완성하는데 시간을 정할 필요는 없다. 글자라는 재료로 만드는 요리는 요리사의 기분과 감각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입맛이 당기거나 허기가 질 때 ‘영감’이라는 원재료를 포착하고 변용하는데 걸리는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작이 반이 되어 한 냄비로 끝날 수 있고, 두세 번 계속 시도할 수도 있다. 아무리 해도 나의 가치관과 꽃이 가진 광대무변의 우주성이 잘 담길지 예측 불가, 그것이 바로 글 요리의 묘미이자 고충이기도 하다.
글자로 체험을 전하든, 스토리텔링을 하든, 독자에게 단 하나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글 요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요리 과정에서 문장의 의미화, 작품의 형상화는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작은 만족이다. 그리고 이 요리가 기행이 되거나 예술이든 철학이든 치유든 생활 에세이가 되든 전개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음도 고백해본다. 이제 냄비 속 글자가 조용하다. 완성되었다는 신호다. 뚜껑을 연다. 이팝나무가 새로운 꽃 글로 변했다.
요리 전 새하얀 이팝나무꽃이 노르스름한 갈색으로 피어났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돌아와 시간의 반복과 순환, 그리고 숙성을 알려준다. 새롭게 피어난 갈색 꽃! 삶의 파고를 잘 견뎌온 내 영혼을 따스하게 품는 법을 해독한다. 나에게 꽃의 의미는 시간의 순환, 삶의 희망이라고. 꽃을 해독하지 못해 길을 잃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팝나무의 숨결을 남기고 싶다. 이팝나무꽃과의 교감, 글자와의 교감 사이에서 꽃의 온도, 사랑의 숙성을 접수한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잡기 위해, 내 안에 잠재된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해독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부러 글자로 요리해봤다.
설레는 마음으로 싱크대 상단에 진열된 접시를 고른다. 먹음직스럽게 담아야 감칠맛을 느끼며 읽을 테니까. 꽃 글을 살리기 위해 초록 테두리를 두른, 약간 이국적인 문양의 접시가 낯설고 좋겠다. 한쪽으로 글자 요리를 놓고 다른 쪽 공간을 조금 남겨 ‘꽃 글을 요리하다’의 맛이 어때요, 라는 느낌으로 여백 있는 플레이팅을 하자. 보는 각도에 따라 우아하기도 하고 숭고하기도 하다. 우스꽝스러운 골계미도 보이고, 비장함도 보인다. 한 그릇에 모든 미적 감각을 다 담을 수 없으니 욕심을 내지 말자. 미적 범주는 독자의 몫이니 시식의 접시를 독자에게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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