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은 없다
장금식
창문을 연다. 낮과 밤, 나와 내 집을 지키는 전봇대와 마주한다. 사고가 잦은 코너 길에서 골목 파수꾼처럼 ‘도로 주소표지판’과 ‘도로반사경’, ‘감시카메라’와 ‘회전금지 표지판’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유독 ‘회전금지 표지판’에 눈길이 간다. 막다른 길인데 회전금지라니 없는 길도 만들어내라는 것인가. 회전하면 과거의 그 길로 갈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흔들리는 곡예사의 외줄처럼 바들거린다. 전봇대 아래와 담벼락 사이에 낙엽이 무리 지어 어슬렁거린다.
대문을 열고 나가 빗자루를 든다. 경사진 집 앞 도로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쓴다. 매일 낙엽 쓸기는 산사의 아침 기도처럼 일종의 도 닦기다. 중심을 잃어 흔들리고 헤매는 내 마음 쓸어내기다. 산에서 날아온 낙엽을 쓸어 다시 산으로 보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면서도 비질이 힘들다. 몸은 좌우로 휘청, 넘어지기도 하고 아래로 이끌리기도 한다.
그때 전봇대의 회전금지 화살표가 나를 지그시 내려본다. 행복했던 과거로 회전하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내 처지를 알아보기라도 한 건가. 방향전환 불가, 좌든 우든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가.
나는 왜 중심을 잡지 못할까? 아무도 나에게 생을 보채며 닦달하지 않고 흔들지 않아도 이미 몇 년 전에 떠난 그곳으로 자꾸 돌아가려 한다. 거기에 묶여있는 내가 괜스레 앞산 풍경을 나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왜 막다른 길 회전금지판 앞에서 불안감을 의식해야 하나. 도로반사경에 굴절돼 비친 낙엽 하나가 막혀버린 길, 미래가 없는 듯 불안한 내 앞길을 말하듯, 하염없이 갈지之 자로 굴러간다.
행복했던 그 시절로 발을 딛기가 힘듦을 인정해야만 하나. 마음을 돌리려니 돌아갈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왠지 모를 서늘함이 발과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간 회전에 익숙하고 회전금지가 낯선 탓 때문인가. 인생엔 가시밭길이 없다고 착각한 탓인가. 낯섦과 착각 사이로 온기가 빠져나가 디디려는 발은 더욱 차고 시리다. 낙엽 쓸기, 낙엽 치우는 일에 쉬라는 신호를 주지만 하루라도 건너뛰면 내 슬픈 회상의 무게가 더 늘어날 것 같아서 그러질 못한다.
3년간, 남편과 시아버님 두 분의 죽음을 맞닥뜨렸다. 거칠고 험한 큰 산을 넘느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다시 중심을 잡고 힘차게 가려 해도 기력을 잃어 팔다리가 축 처진다. 그것을 은유할 대체물이 없다. 회전 금지표지판엔 흩날리는 낙엽만 겹겹이 쌓인다.
한 발자국 뗄 때마다 휘청거리고 오장육부가 요동치며 비어있는 속은 메슥거린다. 허리둘레는 점점 가늘어진다. 못 마시는 와인을 밥 대신 홀짝거린 탓도 있다. 알코올의 힘을 빌린 것은 살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외로워서, 괴로워서, 슬픔에 겨운 감정을 눌러보려던 버둥거림이었다.
슬픔은 견디는 것이고, 엄마는 강인해야 하고, 자식 앞에선 복받치는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누를수록 버텨내던 감정은 더욱 팽팽해진다. 그래도 바람은 내 힘든 몸 상태를 봐주지 않는다. 어김없이 네 집 앞은 네가 쓸어야 한다며 연일 낙엽 떨구는 일을 한다.
내가 돌아가야 할 행복했던 동네는 쌍문동이지만 몸과 마음의 방향을 바꾸기엔 그만큼 시름도 깊은 곳이다. 시시각각 감정의 횡포에 시달린다. 긁힌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곪아가는 부위는 점점 부피를 키운다. 그 슬픔의 몸피가 흐물거리고 축축한데 언제쯤이면 마를 수 있을까. 몸 구석구석 새겨진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스스로 만들어낸 ‘허虛’의 부딪침과 상실감은 계속 좌우로 흔들고 뒷걸음질은 진행 중이다. 상실감 자체가 무섭고 지독히 슬퍼 아직도 곡기를 끊고 엎어져 있다가 일어서면 어이없이 비틀, 돌아가고 싶음과 돌아가면 안 된다는 감정이 충돌한다. 누군가가 내 등을 토닥여주고 함께 아파해 줄 때, 잠시 잠깐 용기 내 일어나야지 하다가 다시 주춤, 좌우로 앞뒤로 흔들린다.
그럼에도 멈췄던 비질을 계속하며 아래로 위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도로와 산의 경계선 너머 산 쪽에는 카펫을 깔아놓은 듯 진풍경이 펼쳐져 있다. 뾰족이 고개를 내밀던 잎, 날카로운 힘과 가시의 흔적은 온 데 간 데가 없다. 푸르고 뾰족한 가시를 위엄으로 가지던, 울창한 나무 위에 앉을 수 있었던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이젠 포근한 솜털 위에도 드러누울 수 없을 지경이다.
전봇대의 표지판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겠다며 넌지시 나에게 말을 건다. 이제 쌍문동 그 길과 추억을 끝내고, 돌아가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 갈 결심을 하라고 한다. 세상사 바람이 여지없이 따갑도록 나를 후려치는데, 흔들리는 지점에서 생긴 내 상처 딱지를 온몸으로 버티며 떼어 낼 수 있을까.
전봇대가 비질하던 나를 살핀다. 일상의 마중물, 버팀목처럼 어둠 속에 갇힌 나를 보듬고 위험에서 지켜주려 보안등을 켠다. 보안등엔 오작동과 파손이 없다는 듯 꺼져가는 의욕에 불을 밝힌다. 잎을 몰고 갔다 몰고 오는 바람이 세차더라도 그 불빛에 힘입어 전봇대 아래에 움츠렸다. 내 심정의 안내판, 반사경, 감정감시의 저울이 되어 내 몸의 기울기에 균형을 맞춘다. 감정의 오작동을 작동으로 돌리고, 파손된 슬픔을 눕히고 기쁨을 곁에 앉혔다.
초록으로 물들었던 생의 여름철도 싱싱하던 앞산의 푸른 잎들도 색을 감추니 나도 시간 속에 부대낀 나와 화해해야 하나 싶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천연의, 형이하학의 잡된 생각과 삿된 마음이 내 가슴 폐부까지 툭툭 치더라도 받아들여야 미래를 살아낼 것 같다. 오전의 태양과 해 질 녘 낙조는 서로 다른 그림자를 만들며 전봇대와 나 사이의 거리도 당겼다 밀었다 하다가 전봇대에 새로운 창 하나를 내민다.
그리운 사람과 함께했던 공간 언저리에서 배회했던 일, 혹시 좋았던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어 넋 놓고 한없이 앉아 있었던 일, 눈물 보이지 않으려 감정을 돌려세울 수밖에 없었던 일, 옆으로 누워 소리 낮춰 훌쩍였던 일, 이 모든 감정의 비등을 씻어내리게 내 두 무릎을 꿇는다. 뒤엉킨 감정 색이 한걸음 물러서도록, 놓쳐버린 풍경을 내 앞에 성큼 갖다 놓도록 마음의 손을 합장한다.
석양이 몸집을 키우며 점점 붉어진다. 비질해놓은 풍경은 푸름에서 갈색으로 건너가는 한 생이 되었다. 비릿한 슬픔도 단풍든 나무 속에 섞인다. 비애와 쓸쓸함에 파묻힌 집 앞 풍광이 방랑을 마친 고요한 숲이 되었다. 낙엽 쓸기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회전금지판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회전은 없다. 회전금지가 필요한 때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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