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집 2
이용옥
아궁이의 장작불이 주홍빛으로 일렁거린다. 시루에서 뿜어대는 희뿌연 김은 낮은 천정에 부딪혔다가 부뚜막으로 흩어진다. 소박한 한복 차림의 종부가 가문의 전통주 담그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낯설지 않은 모습, 텔레비전 화면 속의 그 여인은 어느새 어머니의 모습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어릴 적 참 좋아하던 날이 술밥 찌는 날이었다. 제사와 명절을 지내기 위하여, 또 모내기와 가을걷이하는 일꾼들의 농주로, 무엇보다 애주가인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 집엔 술 떨어질 날이 없었다. 시루에 찐 순 쌀 고두밥 한 덩이를 얻어 씹다보면 달착지근한 그 맛이 일품이었다.
술밥을 멍석에 헤쳐 더운 김이 빠지면 잘게 부순 누룩을 섞어 항아리에 담았다. 거기에 샘물을 길어다 부은 후, 술항아리를 따뜻한 아랫목에 모셔 이불을 덮어둔다. 그렇게 삼사 일이 지나면 시큼한 냄새와 함께 공기방울이 올라오는데, 이것은 술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하루 한 번 정도 저어주며 일 주일여가 지나면 술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은 그렇게 녹록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농가에서 허가 없이 담그는 술을 밀주라 했는데, 세무서 단속에 걸리면 적잖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 보릿고개 넘기가 힘겨웠던 시절에 쌀의 낭비도 막고, 음주로 인한 부작용도 줄이자는 정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친 농부들을 일으켜 들판으로 이끄는 것도, 꺼질 듯 무거운 등짐을 가뿐히 옮기게 하는 것도 막걸리 한 사발의 힘이라는 것을 아는 농부들에게 농주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술 담그기나 간수하는 일, 누룩을 발효시키는 일 등은 밀주 단속반과의 숨바꼭질 같았다. 우리 집 술 항아리는 짚동가리 아래 토굴이나 나뭇간 밑의 원형 콘크리트 통에 숨겼고, 누룩은 천정의 서까래 밑에 감춰두곤 했다.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면 담장을 타고 오르는 찔레나무 밑에 돌로 쌓은 움이 술 창고가 되었다. 그곳엔 용수 박아 떠낸 청주 원액에서부터 간간이 밥알이 뜨는 동동주에 막걸리까지 다양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우리 집은 자타공인(自他共認)의 술 익는 집이었다. 돈 떨어진 적은 있어도 술 떨어진 적은 없다는 어머니 말씀이 빈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술 인심 또한 넉넉하여 사랑이나 대청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소가의 종조할아버지와 삼촌·당숙은 물론, 아버지의 친구 분들이나 시제 지내러 온 친척들까지 몇 날을 함께 웃고 떠들었던 것도 술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술은‘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라‘나눠 마시는 정’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철학이었고, 때 없이 불러들인 군식구들과의 겸상은 흔한 일이었다. 낯선 술손님에게 밥그릇을 넘긴 어머니의 허한 속을 호탕한 웃음으로 채우는 아버지가 미울 만도 했으련만, 찡그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걸로 봐 어머니 역시 그 술 철학의 동조자가 아니었던가 싶다. 거나하게 취하여 돌아가는 넉살좋은 술꾼은 어머니의 술 빚는 솜씨를 비행기 태우며 은근히 동동주 한 병 얻길 청하곤 했다.
열 살 무렵, 어머니는 막걸리 한 주전자와 안주를 챙겨주며 논일하는 분들께 갖다드리라고 하셨다. 시냇물을 건너고, 신작로를 지나 조붓한 논둑길로 접어든 얼마 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흰색과 보랏빛으로 하늘거리는, 토끼풀꽃 같이 가녀린, 그러나 비길 수 없는 화려함으로 나부대는 작은 꽃. 자운영이 소복이 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주전자와 안주 바구니를 놓고 꽃을 따기 시작했다. 그 꽃으로 꽃반지와 화관을 만들어 새언니에게 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난 기절할 듯 비명을 지르며 내달렸다. 뱀이었다! 커다란 율무기가 똬리를 풀고 혀를 날름거리며 날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비백산하여 한참을 달리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허전한 손, 저 멀리 보이는 주전자…. 그러나 그걸 찾으러 갈 용기는 이미 없었다. 용기는커녕 우글거리는 뱀 무리가 발목을 휘감는 듯해 한 발 옮기기도 두려운 지경이었다. 겅중겅중 뛰어 신작로로 나왔다. 살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은 금세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변했다.
풀이 죽어 느릿느릿 논으로 갔다. 일꾼들은 늦은 새참 시간에 빈손으로 온 심부름꾼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울먹이며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그들은 무슨 모험담이라도 듣는 듯 껄껄거렸고, 술 주전자는 논일 돕던 오빠가 달려가 찾아왔다. 따스한 봄 햇살에 데워진 막걸리를 각종 뱀 이야기를 안주삼아 마시던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허술한 심부름꾼의 어이없는 실수를 웃음으로 덮어주던 어른들의 마음이 지금도 날 따뜻하게 한다.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 시절, 죄 짓는 듯 숨어 만들던 밀주가 전통주라는 이름하에 뼈대 있는 집안의 자랑거리가 된 것도 시간이 만들어낸 재미있는 변화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엔 절대적인 옳음도, 절대적인 그름도 없는 듯하다. 어느 시대 어떤 정책과 만나고 무엇을 선택하며 사느냐, 그 선택이 내게 어떤 의미와 행복을 주느냐를 찾아내는 것이 삶의 과제인 것 같다. 오랜 밀월 관계의 연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태양아래 환히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게 있어 술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음지에 숨겨야 했던 소중한 이야기를 바깥으로 드러내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내 귀중한 사람들과의 인정 넘쳤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술 한번 담가봐야겠다. 술 익는 우리 집,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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