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감상

< 술 익는 집 3> 이용옥

율리안나 2016. 10. 2. 14:46

술 익는 집3

이용옥

황금빛 밀대에 부딪히는 맑은 햇살이 백합의 몽환적 향기를 깨우는 유월이었다. 때 맞춰 베어들인 밀단이 바깥마당에 낟가리를 틀면, 마당 가운데 펼친 멍석에선 최신 탈곡기가 하루의 시동을 걸었다. 일꾼 서너 명이서 번갈아 새 탈곡기의 주둥이에 밀단을 들이밀면 고 신통한 기계는 웽웽거리며 통통한 밀 나락을 쏟아냈다.
디딤 탈곡기를 사용하던 때보다 쉽고 빠른 밀 바심에 느긋해진 아버지는 새참으로 탁주 두어 사발을 들이켜고 사랑으로 들어가 퇴침을 베셨다. 나른한 김에 한잔씩 했겠다, 주인부터 솔선하여 일손을 놓았겠다, 일꾼들도 대청 한구석을 차지하고 낮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햇감자 캐러 밭에 갔던 어머니가 소나기에 쫓겨 집으로 뛰어 왔을 때, 마당에 펼쳐진 광경은 황당했다. 단 몇 분 동안 내린 폭우는 담아놓은 밀 자루와 탈곡 전의 밀단들을 모두 적셔 버리고, 자루에 담기 전의 밀 나락마저 마당 아래 도랑과 언덕길로 떠내려 보냈다. 고함소리에 단잠을 깬 아버지와 일꾼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부산을 떨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마당가에 흩어진 밀알을 쓸어 담는 일 뿐이었다.
날이라도 반짝 개었으면 좋으련만, 그 후로도 며칠간은 날씨나 어머니 얼굴이나 하나같이 찌뿌둥하여 흐림 아니면 비였다. 밀단을 말리려 마당에 널었다가 헛간으로 끌어들이길 여러 번. 그 사이 밀 이삭에선 엿기름 같은 싹이 났고, 흩어졌던 밀알은 뿌리를 내려 마당가를 아예 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담배 건조용 하우스 안에 널어놓은 젖은 밀알들도 검으튀튀하게 변색되며 구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누룩 띠우기는 물 건너갔으니 술이나 끊으시라고 푸념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진 당신도 어이없다는 듯 담배만 피웠다. 그 아까운 알곡이 퇴비로 변해가는 상황이 가장 안타까운 이는 누가 뭐래도 애주가인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모두 예상대로만 되어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아버진 그해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맘껏 술을 드셨고, 우린 각본도 연출도 없는 드라마 한 편을 맛깔나게 관람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2인조 술 조사관이 들이닥쳤다. 어머니의 허둥대는 모습은 ‘우리 집 술 많소’ 하는 자진 신고서였고, 그들은 온 집안을 누비며 청주에 동동주, 막걸리를 찾아내어 안마당에 전시했다. 넘치는 전리품에 기세가 등등해진 그들 중 젊은이가 어머니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담근 거쥬?”
“산거유.”
“이르키 많은 디두유?”
“모리(모레)가 지사(제사)유.”
“탁주루두 지사 지내유?”
“지내구 마셔야지유.”
파랗게 질린 얼굴과 달리 어머니의 능청스런 대답은 결코 그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 때 지켜만 보던 나이 많은 이가 술 산 곳을 대보라고 했다. 순간 어머니는 당황했다.
“금메, 그게, 그러니께….”
어디라고 말하면 대질하잘 게 뻔하고, 그러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내가 팔았소’ 하고 어머니 편을 들어 줄 것인가. 어머니의 뜻 모를 언어가 백기로 내걸리려는 순간이었다.
“자네가 뭔 일이랴?”
대문 쪽에서 들려오는 굵다란 목소리에 긴장된 눈길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아버지였다! 서슬 퍼렇던 늙은 술 조사관은 선뜻 다가온 아버지와 어정쩡한 악수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그는 가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적이 있던 ‘세무서 술친구’였던 것이다.
밀주가 대 정벌을 감행 하려던 그와 그의 동료는 머쓱한 채 서 있었고, 상황을 간파한 아버지는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라며 사랑으로 들기를 권했다. 머뭇거리던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들어갔고, 잠시 후 술상을 들이라는 아버지의 쩌렁한 목소리가 안채를 울렸다. 그 한마디에 분위기는 급반전을 이뤄 전시됐던 밀주의 증거물들은 금세 접대용 약주로 둔갑했고, 어머니는 후들거리던 다리를 재게 놀리며 갖가지 안주를 만들어냈다.
권커니 잣커니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가는 와중에도 ‘맹근 술이다’, ‘아니다’ 설전이 오갔고 아버지의 한마디가 또 한 번의 헤프닝을 만들었다.
“씨종자 읎이 새끼 치는 거 봤남? 찾어내 봐. 벌금 낼 테니께.”
누룩을 찾아내면 밀주임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거나해진 취기에 객기까지 동한 세무서 친구는 젊은이를 시켜 누룩을 찾아오라고 했다. 원액에 가까운 청주 몇 잔에 알딸딸해진 젊은이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도 안 가는 상황에서 비틀거리며 안채로 들어왔다. 누룩을 찾겠다는 말도 못하고 그저 안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그에게 한층 원기를 회복한 어머니는 광이며 다락, 머릿방 문을 자신 있게 열어젖혔다.
“봐유, 읎쥬?”
불과 두어 시간 전의 ‘고양이 앞에 쥐’ 관계는 역전되어 어느새 어머니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정말 없었을까? 누룩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집엔 ‘씨종자 읎이 새끼 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있었다. 즉 누룩이 아닌 누룩이 있었다는 얘기다. 누룩의 페이스 오프! 그 기막힌 성형을 집도한 이는 바로 밀 바심할 때 혼을 빼놨던 소낙비였다.
담배 건조용 하우스에 널었던 밀은 이어진 궂은 날씨에 제대로 마르지 못하고 그만 썩어버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그것을 소 먹이로 주던 아버지는 못내 아까운 맘에 몇 알을 씹어보았다. 그런데 그 맛이나 냄새가 누룩에서 나는 특유의 그것과 비슷했다. 혹시나 하는 맘에 밀 한 되를 맷돌에 갈고, 고두밥을 섞어 항아리에 앉혔더니 정말 술이 되는 것이 아닌가! 밀알에 스민 물기와 후텁지근한 하우스 안 온도에 지친 밀이 스스로 발효를 일으킨 것이었다. 포기했던 술을 다시 마시게 된 아버지는 잃었던 자식이라도 찾은 양 그 신통한 밀 자루를 신주단지처럼 모셨다. 젊은 술 조사관은 머릿방에 모셔 놓은 밀 자루를 여럿 보았으나 그것이 문제의 ‘씨종자’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긴 여름해가 서산마루를 넘을 때쯤에야 휘청거리며 집에 가겠다고 나선 아버지의 술친구는 무엇이 미진한지 머뭇거렸다. 눈치 빠른 아버지는 청주 댓병 하나씩을 그들의 자전거에 실어줬다. 그제야 자전거에 올라 흔쾌하게 떠나는 주연배우들의 뒷모습을 우리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려니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비틀거리는 그들의 자전거가 동구 모퉁이 다리를 지날 때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위험한디….”
“글쎄유, 저러다 개울로 쳐박히먼 크게 다치실텐디….”
오빠의 걱정어린 맞장구에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술 말여. 쯧쯧, 저거 깨지먼 아까워서 어쩐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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