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역사와 문학을 말하다
-알퐁스 도데의 『교황님의 노새』를 중심으로-
장금식
남프랑스 특유의 건조한 바람 미스트랄이 우리를 반긴다. 아비뇽이다. 아비뇽 다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로 잔잔히 흐르는 론 강의 물결, ‘아비뇽 유수’라는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도히 흐른다. 교황들이 보호의 명목으로 갇혀있던 당시의 역사를 알려주듯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높고 견고하다. 검은 듯 누르스름한 갈색 벽돌이 고풍스럽다. 세월을 말해주듯 벽돌 사이에 낀 초록 이끼가 그윽한 정취를 더한다.
‘아비뇽 유수’는 프랑스의 필립 4세와 교황청의 갈등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200년 가까이 벌인 십자군 전쟁은 실패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흑사병은 창궐했다. 13세기 유럽 세속군주 권한이 급속하게 성장했고 로마 교황권은 부패와 세속화로 추락했다. 시민들은 교황의 보호보다 왕의 보호가 필요다고 느낀다. 프랑스의 필립 4세는 왕권을 강화하고 로마 교황청은 필립 4세의 견제를 받는다. 급기야 교황청은 1309년 아비뇽으로 옮기게 되고 프랑스 왕권의 지배하에 놓인다. 그 후 70여 년간 프랑스 출신 교황들은 아비뇽에 거주한다. 이른바 ‘아비뇽 유수’ 사건이다.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의 작품 『교황님의 노새』의 배경지가 바로 아비뇽이다. 교황님의 노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도데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지르르 윤기 나는 새까만 털, 튼튼한 발, 널찍한 엉덩이’를 가졌단다. 게다가 바짝 쳐든 머리에는 깃털과 리본, 은방울과 수술이 장식되어 있고, 순진한 눈매와 쭈뼛거리는 두 귀는 착한 어린이를 닮았다니 교황님의 사랑을 받을만하다. 이 노새를 이용해 교황님의 환심을 산 티스테 베텐느가 작품의 중심에 있다. 베텐느는 지위가 높은 권력자들에게는 갖은 계략과 술책을 쓰며 비굴할 정도로 환심을 사려하고, 소외되거나 힘없는 사람에게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도데는 그의 간교함을 해학으로 꾸짖는 다.
성곽 주변을 돌아보다가 성문 안으로 들어간다. 1300년대, 교황청의 흔적을 따라 가본다. 도데는 “잔치가 벌어지는 활기찬 고장, 성체거동과 순례자들의 행렬, 꽃으로 수놓인 아름다운 꽃길을 걷는 추기경들, 라틴어 성가를 부르는 교황의 병사들, 수사들의 따르라기 소리, 거대한 교황청을 둘러싼 집채들, 레이스를 짜는 소리, 제의를 짜는 베틀의 북소리, 찬미가 소리, 저 멀리 다리 쪽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로 마을 전경을 묘사하지 않았던가. 창도 감옥도 기근도 전쟁도 없다던, 도데가 말한 그 평화로운 시절을 떠올려본다.
요새같이 거대한 이곳이 아비뇽 유수(1309~1377) 동안 일곱 명의 프랑스 교황이 머물렀던 곳이라니. 지금은 유폐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고 안온하다.
로마 교황청엔 쓰리고 뼈아픈 역사로 남았지만 그와는 아랑곳없이 마치 비밀의 정원이나 지상의 낙원이라도 되는 듯 수많은 관광객의 발자국이 쌓여간다. 혼란은 끝나고 갈등은 멈췄다. 당시 종교가 가졌던 욕망을 벗어던지고 뭇사람들을 맞이한다. 교황님의 노새 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도데의 또 다른 작품『별』에 나오는, 목동에게 양식을 실어다주는 주인집 노새의 방울 소리와 겹치며 고요와 정적이 깨진다. 다시 신비하고 경건한 세계로 접어든다. 론 강과 뤼브롱 산의 정령들을 만난 듯, 영혼이 정화되어 지상에서 천국을 맞이한 기분이다.
교황청 뜰의 잔디는 겨울인데도 초록 옷을 입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띄는 곳은 교황님의 방이다. 대혁명 때 거의 파손되었지만 알록달록 사각무늬로 된 바닥타일이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한두 개의 가구도 보인다. 다른 방에는 아비뇽 유수로 인해 이곳에 기거했던 일곱 명의 교황님들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그중 한 분, 보니파스 교황님이 작품 속에서 웃는다. 교황님이 프로방스 지방 잔여왕의 알현을 받는 사진도 걸려있다. 작은 성당과 연회장을 지나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무엇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종탑을 보고 싶다. 티스테 베텐느가 교황님의 노새를 골탕 먹이려고 종탑까지 끌고 갔던 그곳이다. 꼬불꼬불 나선형 계단, 노새의 발걸음으론 한 시간이나 걸어 올라가야 할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드디어 꼭대기다. 아비뇽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붕의 모습은 마치 퍼즐로 맞춰놓은 그림 같다. 아비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간직해왔다. 기쁨과 설렘이 꼭대기에서 이는 산들바람에 섞인다. 아, 감상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지. 교황청의 유리창이 진동할 만큼 노새는 놀람과 공포감으로 크게 울부짖지 않았던가.
교황님도 놀라 뛰쳐나와 봤지만 간교한 티스테 베텐느의 거짓말, 노새 혼자 직접 올라갔다는, 그 소리를 노새가 알아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노새가 된 듯 그의 교활함에 화가 난다. 무엇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지만 교황님의 노새로서 체면을 구길 수야 없으니 오로지 인내하는 길 밖에 없었을 게다. 베텐느는 그런 노새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었을 터, 노새는 호시탐탐 강한 발길질 한번으로 날려버릴 생각만 했으리라.
결국 7년 동안 참아온 교황님 노새도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교활한 자를 용서 못하리라. 노새는 발길질 한 방으로 베텐느의 간교함을 날려버렸다. 에라, 팍! 노새의 발길질이 얼마나 셌을까.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강하고도 질긴 그 사악한 본성도 한순간에 무릎을 꿇었다. 시원하게 복수하는 교황님의 노새가 얼마나 통쾌한지. 내 답답한 가슴도 뻥 뚫린다. 익살과 해학으로 감동을 주며 부드럽게 인간을 비판하는 작가를 아비뇽에서 다시 만나니 교황청이 더 인간에게 가까워진 것 같다.
프랑스 남부 님(Nimes)출신인 알퐁스 도데. 뛰어난 감수성과 매력 있는 회 화력, 풍부한 표현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다. 골계미滑稽美는 물론 가련한 인간의 비애를 눈물 글썽이며 보는 그의 눈에는 내적 진실성이 담겨있다. 정념에 대한 이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 마음껏 나래를 펼치는 놀라운 상상력도 그의 장점이다. 진실과 환상, 진지함과 유머감각, 아이러니와 연민 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조화를 잘 이뤄낸 작가가 있는 한, 차가운 겨울의 성채城砦라도 춥거나 고독하지 않을 것 같다.
교황님의 노새가 살아 있다면, 베텐느같은 사람이 있다면, 무어라 말할까. ‘어진 양심과 내적인 눈으로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시력을 키워라. 핑계를 일삼는 악행을 피하라. 물질의 애착과 허영에서 자유로워라.’ 이러지 않을까.
성 밖으로 나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다리 앞에 섰다. 그 유명한 아비뇽 다리다. 동요 가사처럼 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싶다.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들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싶다. 저물어가는 오후, 사진 한 컷으로 남긴다.
마른 잎 날리던 이 겨울도 곧 지나갈 것이다. 성벽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끼도 새봄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리라. 저녁 무렵 성벽 돌이 촉촉하다. 인간의 숱한 애욕을 씻어 내릴 봄비를 기다리는가. 성 밖으로 불어오는 미스트랄도 욕망을 걸렀는지 온아하고 따뜻하다. 간교한 인간에게 내리는 신의 벌까지도 녹여낼 만큼 오래도록 평화로운 교황청으로 남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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