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주식회사
장금식
나는 사장이다. 좀 특이한 회사를 갖고 있다. 직원이 필요 없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다. 처음엔 이 회사를 운영해보라는 몇몇 지인의 권유대로 겁 없이 맡았지만 지금은 제법 열정과 애착을 가지고 있다. 설립한지는 3년밖에 안 되었지만 생산성이 적지는 않다. 생산에 필요한 접근성은 수월하나 수익에 대한 보장은 없다. 생산 대비 불확실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중단하지 못한다. 이런 회사의 사장, 수필주식회사 사장이다.
초창기라 성공대박을 기대하거나 최우수 회사를 만들겠다는 야심은 무리다. 아직 투자를 많이 하지 않은 만큼 손해를 볼 위기에 덜 노출되어있다. 수필주식회사에서는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위험 무수익이라는 말은 있을 수 있다. 주식거래는 없되 주기적으로 상품 발표는 한다. 가끔씩 거래절벽 현상이 올 수 있으나 활발한 거래로 인해 상품 고갈현상도 생긴다. 즉각적인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절벽과 활발함의 경계는 사장의 노력에 달려있다. 사장이 하기 나름이다.
부담이 적은 만큼 ‘젊은 사장’이라는 호칭이 그리 나쁘지 않다. 경험 부족의 결과는 당연히 받아들여야한다. 저평가 우량회사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그게 쉬울까. 참신하고도 진보적 혁신을 가지고 앞서가는 이미지 창출을 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으리라. 여느 회사와 좀 다르게 가고 싶다. 스마트한 경영과 고도의 전략이 무엇일까, 고민이다. 혁신의 아이콘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거듭 고민이다.
회사 설립목적이 무엇인가? 수필 브랜드를 위한 이미지 전략은? 상품의 종류는? 스마트한 발돋움은? 미래의 비전은? 등등 질문이 쏟아진다. 회사 소개를 할 겸 질문에 답을 해보자.
#1. 회사 설립목적이 무엇인가?
모든 회사는 물질적 이익창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우리 회사는 사적 영리보다는 지적, 정신적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다. 정신세계나 힐링에 다소 기여하는 소규모 사회공헌 책임회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알아내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작업을 한다. 정신의 가치와 개혁과 진보를 위해 충실한 상품을 만든다. 구름과 바람에게 말을 걸어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었다가 가슴에 새기고, 그 말들을 곱씹고 삼키고 다시 되새김질하고 숙성시킨다. 숙성에 필요한 아이템은 고정관념 타파, 식상한 언어 탈피하기다. 잘 숙성된 말들을 골라 고도의 정신적 가치 창출이라는 ‘수필’ 브랜드를 만들어 상품화하는 것이 근본적 설립 목적이다.
#2. 수필 브랜드를 위한 이미지 전략은?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주의사항을 강하게 요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의 진정한 자기성찰과 자아천착, 그리고 글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수필, 움직이는 수필, 살아있는 수필이다.
바람과 구름의 말을 생산증대의 원자재로 사용한다. 고객들이 물품목록만 보고 던져버리는 상품이 아니라, 심신이 지쳐있는 고객들에게 조금의 피로라도 풀어주는 혁신상품으로 고객들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상품 만들기다. 때론 낯설듯 낯설지 않은 바람결과 무늬를 만들어 세상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고객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겠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앞서가는 과학발전에 발맞추어 획기적인 신품종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으나 적당한 속도조절은 필요하다. 단지 ‘기회는 늘 오지 않는다.’는 각오로 영혼의 무게를 늘리는 상품개발에 주력한다.
생산자의 동공은 넓히고 가슴은 활짝 열고 뇌는 진솔하면서도 생생하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 생산자는 반드시 자기만의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어야한다는 것. 수필 브랜드 속에 생산자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상품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주된 이미지 전략이다.
#3. 상품의 종류는?
종류는 다양하다. 다양성의 충족은 풍부한 아이디어 창출에서 비롯된다. 눈은 크게 뜨고,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뿜으며, 세상 이야기 듣기에 주안점을 둔다. 두 귀를 활짝 열고 눈, 코, 귀로 들어온 1차적 정보를 가슴에 담아 글맛을 정성껏 버무려 만들어낸 상품들이다.
다디단, 시큼한, 짭짤한, 매콤한, 쓰디쓴 인간사에 갇혀있는 언어들을 끄집어내 옹골진 인생사계로 만든다. 신상품인 『프로방스의 태양이 필요해』에서 선보인 종류는 다음과 같다. 여행, 사소함에 의미부여, 기억 불러내기, 상상적 수필, 사투리 수필로 구분하여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① 여행은 회사의 얼굴이라 할 만큼 큰 부분을 차지한다. 큰 소재를 끌어올 수 있는 대안이었다. ‘여행은 자유롭다. 새롭다. 현실을 떠남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마주한다. 여행은 책 한권을 읽는 것보다 더 값지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보고, 느끼면서 느슨한 오감을 살린다.’는 기본 콘텐츠를 끌어와 인문학과 철학적 사유를 실어 ‘여행은 공부다’라는 체험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떠날 때는 가볍게, 돌아올 때는 무겁게 배낭을 조절했다. 실제 여행 가방은 짐을 없애고 최대한 줄였다. 딱 필요한 것만 준비. 여행자로서, 수필가로서 영혼을 담는 배낭의 무게는 무겁게 만들기였다. 인간영혼의 무게가 21g이라고들 하는데 수필주식회사 사장이 지녀야할 영혼의 배낭은 그것보다 더 무거워야 되지 않을까.
배낭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전해주는 말과 하늘이 보여주는 수많은 구름의 형상들을 담는 것이 우선일 게다. 자연의 말과 형상을 온전히 품고 새로운 무늬로 엮어 채우는 동안 영혼의 배낭은 꽤 묵직해졌다.
등에 걸머지기는 버겁기도 했지만 내 영혼을 담은 상품이 소비자에게 건너갈 때는 관념이나 논리의 혼란, 따분한 푸념,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같은 것을 버리고 쉽게 읽히면서 산뜻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남에게 짊어지어주는 배낭은 가볍게, 내 영혼의 배낭은 무겁게’ 라는 원칙을 세웠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읽을거리를 다양하게 구색을 갖춰봤다.
② 사소함에 의미부여하기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을 붙들어 내 것으로 만들었다. 주로 지하철 안에서, 공원에서, 카페에서. 굳이 들으려고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될 이야기에도 귀를 대고 순간포착을 했다. 상품의 주제 특화에 대한 답을 찾으면 그야말로 사소함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회적 제반 문제에 동참하는 사회수필이나 인간 본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수필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문학은 정치와 인간사, 모든 것에 참여하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즉, 참여문학을 말하는데 수필에서의 사회참여는 바로 ‘사회수필’을 말한다. 한 개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무심한 말이나 행동도 문학으로 접목되면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③ 기억 불러내는 작업이다. 누구나 과거가 있고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저편의 시간에 있는 기억을 불러내 현재와 연결 지어봤다. 자기반성이나 성찰이 덧붙여졌다. 소비자의 호응과 공감대를 높이는 요소가 될 것이다. 나의 수필 상품은 아직 미흡하지만 잘 쓴 수필 한 편은 상처받은, 아픈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을 게다. 세월이 가기 전에 의미 있는 기억을 많이 복기하여 저장해두어야겠다.
④ 상상적 수필도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진솔하지 못하다는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실제체험을 기반으로 해서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상력을 발휘했다. 진실왜곡이 아니다. 진부함은 ‘싱크 홀(sink hole)’로 보내 버리고 think hole을 찾아 소비자에게 깊은 재미와 참신함을 주려고 노력했다. 달동네가 예술마을로 바뀌는 데는 벽화와 같은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듯,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꾸는 데는 상상적 언어의 마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상상력에다 유머와 위트를 첨가해보니 재미있는 수필로 부활할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 수필의 약체를 보완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된 상품으로 매출 1순위로 가기 위한 제 1요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⑤ 사투리를 곁들인 수필도 담았다. 강한 어조를 부드럽게 완화시켜주면서 향토성이 살아나 잊혀가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공부하는데 이만한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밋밋하지 않아 좋고 건강으로 잃은 입맛도 불러들일 만큼 감칠맛이 있다. 또 한 번만 읽고 덮어두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처럼 두세 번 읽히는 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간다.
#4. 스마트한 발돋움은?
여타 회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인재양성을 위한 발전을 꾀하고 있다고. 나의 수필주식회사는 인재양성 대신에 ‘인격수양을 위한 협조자’로 가겠다. 독점보다 협업도 괜찮다. ‘메이드 바이 장금식’ 상표를 달고 당당하게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것이다. 수필이 문학의 자원이 되고 문학의 보물이라는 이미지를 내걸고 스마트한 소재 발굴을 향해 가겠다.
생산을 위한 자원의 보존양이 문제다. 육해공으로 뻗어나가 탐사를 해야 한다. 현재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재미. 하늘을 날고 해저를 탐사하며 상상력으로 가치실현과 미래비전을 제시해야한다. 단지 요즈음 대세인 관광이나 휴가에만 몰입하면 다양성 부족현상이 생기니 환경, 재생, 교육, 기부, 노인문제, 소외 등 여러 개발호재를 내세워 수필 상품의 신진 대사율을 높여야한다. 화석연료와 같은 묵은 소재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에다 친환경이나 신생소재를 덧붙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것을 발굴하면 더없이 좋겠다. 사업성이 불분명하거나 갈 길이 멀어도 언젠가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서두르거나 안달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정신적 가치에 보탬이 되는 사업이므로 자부심을 가지면 된다. 수필회사는 계속 진화중이다. 한옥의 백미는 서까래이듯이 나의 회사의 백미는 인격수양을 위한 협조자가 되는 것에 있다.
# 5. 미래의 비전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려 다중고의 인생이 앞을 가릴지라도 주저앉지 말자. 바람은 늘 불지만 그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가다가도 방향을 바꾸는 게 바람이다. 세기도 순식간에 바꾼다. 부드럽다가도 폭풍을 부르거나 돌풍 속에 잔잔한 바람을 선사하기도 한다.
바람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다. 무방비 상태에서 폭탄처럼 퍼부을지라도 속수무책인 것이 우리의 삶이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 같은 바람이 예기치 않게 몰아닥칠지 모른다. 그런 불행이 닥친다고 한숨만 쉴 것인가.
뼈아픈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어 현재를 미래로 활용하는 문학으로 거듭나야할 게다. 평등과 불평등, 합법과 불법, 미와 추, 긍정과 부정 등의 경계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야할 게다. 고통을 함께 나누며 풍향계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내 수필주식회사의 비전이다.
또 하나의 비전은 인생의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부자유하게 만들었던 목록을 찾아 적는다. 그것을 인생의 적폐로 삼되 함부로 취급하지 않고 진정한 가치를 살핀다. 이를 바탕으로 새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본다. 칼만이 아닌 문(文)이 지닌 묘약으로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황폐한 땅에 숨결을 불어넣고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도 그 리스트 중 하나다. 여러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가치수익창출을 위해 신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이상으로 수필주식회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수많은 다른 회사에서 생산하는 미래의 수필 모두가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변방에서 ‘나 홀로 수필’로 있지 않고 타 장르와 공동가치를 꾀하는 것이 그림의 떡이 아니길 소망한다.
수필을 포함한 문학세계가 다시 활짝 피는 봄을 맞이하면 좋겠다. 몇 년 전, 나의 수필들을 하나로 묶은 첫 상품 세트 『내 들판의 허수아비』는 무료 제공을 했다. 따끈따끈한 최신 상품 『프로방스의 태양이 필요해』는 유료화하는 것도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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