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엔 시간이 산다
장금식
골목길이다. 옛날의 그 벽과 좁은 길이 맞나 싶다. 같은 골목, 같은 담벼락이나 그땐 왜 그리도 돌담 벽이 거칠게만 느껴졌을까. 바닥도 평평한데 기울어진 느낌과 왜 그렇게 깊이 시름 했을까. 다시 같은 길을 밟으며 몸과 마음의 결을 가다듬는다. 촘촘하게 이어진 골목을 찬찬히 살핀다. 길 위에 그리고 켜켜이 쌓인 시간 위에 나를 얹어본다.
벽의 색이 조금 바랬다. 여러 간판과 식당 이름도 바뀌었으나 여전히 건물의 원형은 변함없다. 내 안에 끈끈하고 축축한 기억들이 눌어붙어 있어도, 오늘의 한두 개 통증이 지금 이곳에 스며들어도 끝내 시간은 흩어지지 않는다. 늘 이른 새벽 기도드리러 갔던 생 페르디낭 성당에서 아흐마이유 거리Rue d’Armaille를 따라 개선문까지 걸어간다.
자동차 한 대 다닐 정도의 좁은 길이나 내겐 넓고 친숙한, 올곧은 길이다. 성당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출입문과 중간 문 등 여러 개 문을 활짝 개방해놓아 내 집 들어가듯 쑥 들어갔다. 의자만 교체돼있다. 옛날보다 좀 더 편한 의자라 오래 앉아 기도할 수 있다. 정문으로 나오니 주변 곳곳이 낯설지 않다.
내가 35년 전 녹음기를 샀던 가게가 간판만 바뀌었지 그대로 있고 그 옆 카페 또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듯했다. 거리가 협소하니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구나 가족 같다. 주름진 모습이 없는 행인처럼 골목은 팽팽하고 축축 늘어지지도 않는다. 뾰족 나오거나 모서리져 이방의 산책자를 당황하게 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방인의 침묵과는 충돌 대신 화합하듯, 오늘, 지금, 이곳엔 이방인의 숨결이 시간에 스며들어 단단히 굳어진 골목 풍경을 보여준다.
성당 바로 앞엔 성물 가게가 있다. 명동성당 가톨릭 회관 1층 성물 및 도서를 파는 가게와 비슷하다. 새로 들어선 신경정신과 병원을 지나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곳, ‘밥 플러스’라는 간판의 한국식당도 새롭다. 그 옆의 일식집, 사이공 누들 집도 동양적이라 반갑다. 맞은 편에는 서양식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동서양의 공존이 친근해 이방인의 발걸음에 에너지를 얻는다.
좁은 길을 빠져나올 때쯤, 옛날에 들어갔던 그 카페가 손님을 기다리며 나른하게 졸고 있다. 붉은색 어닝이 설치된 테라스 아래 바깥 의자엔 한두 마리 비둘기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이른 시각이라 음악은 흐르지 않는다. 곧 금발의 파리 사람들이 햇볕을 쬐며 노상 벤치에서 점심을 먹겠지. 낯선 눈동자들이 낯설지 않고 낮달이 익어갈 무렵이면 비둘기 대신 사람들로 빼곡할 카페다. 오래 시선이 머문 만큼 카페 문턱이 납작해져 있다. 잠시 주저하다 문턱을 넘고 자리를 잡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들었다. 나는 유달리 파리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를 좋아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하고 우수에 찬 그리움과 외로움을 에스프레소가 녹여줄 것 같아서 그렇다. 겹겹이 쌓인, 깊이 정박한 절망감, 그 위에서 웃고 싶어서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장착된 혼돈과 불안이 그 근원의 뿌리를 영원히 되살아날 수 없도록 지구 밖 어느 늪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곁가지 감정들이 폭풍처럼 밀려와도, 숨 멎을 듯 침묵 속을 휘저을지라도, 방황으로 인한 돌발적, 치명적 실수를 하더라도, 가늠할 수 없는 좌절감이 나를 병들게 하더라도, 먼바다에서 이는 티끌만 한 파편이 예까지 격랑을 불러오더라도, 고통스러운 현실이 부정의 빼곡함을 부추기더라도, 이 카페는 나를 보듬고 토닥여줄 것 같아서다.
새로 생긴 병원과 식당, 사라진 가게들이라도 그때 그 골목의 방향은 그대로다. 내가 앉은 카페에 빛이 들어오는 각도도 변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카페에 드리워진 햇살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멈춰있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의 층에 쌓인 골목은 아직도 생명을 잉태하는구나, 싶다. 실핏줄처럼 촘촘한 골목길의 빛줄기는 생의 활력이다. 카페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많은 시간이 흘렀다.
파리의 지붕을 비추고 저마다 관계하던 지인들과 공감의 토대가 된 태양, 그 아래 골목과 길에서 더욱 추억을 늘리고 싶어 오래 붙잡는다. 요 며칠간 유난히 맑은 하늘은 축복이다. 은총의 가장자리에서 저 하늘이 내 소중한 보물을 데려갔지만 잠시, 아니 계속 부정의 생각을 차단하려 한다. 해 질 녘 어둠 속으로 빛이 흔적을 감추기 시작해도 긍정에 잇닿아있는 이 순간, 내 언어는 내면에 이는 잔물결로 골목길의 그 빛, 그 개념을 원상으로 복귀한다.
도시에 바람이 분다. 빛을 몰아서 낮의 색을 가로등에 얹으며 꼬리를 이어간다. 지금 심중을 언어로 어떻게 형상화해야 하나.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바람도 햇살도 나도 그저 현존하는 지금에 있을 따름이다. 현학과 존재론적 사유에 지쳐있던 날들, 그 피로를 덜어주는 파리의 골목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온통 숲과 공원, 그 푸르름을 저 멀리에 두고 골목은 말이 없다. 벽과 구부러진 길 사이에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나에게 다시 길을 내준다. 내가 머문 시간은 골목골목 나를 어루만지며 숨을 틔운다. 그 숨결의 새근거림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듯하나 그 틈에서 한걸음 물러선다. 해가 기울어지려 하자, 골목의 그림자는 천천히 길어진다.
그 골목엔 여전히 시간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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