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로쿠엔스
장금식
밭, 전(田)이라는 글자를 볼 때면 하나의 가정을 연상하게 된다. 밭을 갈 듯 가정도 잘 경작을 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입 구(口)자 안에는 열 십(十)자가 들어앉아 있다. 십(⼗)은 완성의 숫자이기도 하지만 십자가와도 닮았다. 십자가의 고행과 수난, 참고 견뎌야할 십(十)의 과보만큼이나 입(口)은 많은 대가를 요구한다. 말하는 인간,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의 업보다. 가정을 옥토로 가꾸기 위해선 입의 역할이 중요하리라.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도 가끔 티격태격하는데 그 대부분이 말로 인해 빚어진다. 일전에 남편과 극장엘 갔을 때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닉과 에이미는 파티에서 만난다. 그 순간, 그들은 사랑의 콩깍지로 눈이 먼다. 워낙 단단하여 누구도 벗길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콩깍지 커플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 돈, 불신, 거짓 문제가 개입되면서 입씨름이 벌어진다. 급기야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에이미가 갑자기 사라진다. 유명 인사였던 그녀가 사라지자 세상은 실종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언론은 그녀가 살해되었다고 보도하고 경찰은 닉을 용의자로 주목한다. 스릴러 영화 <나를 찾아줘>의 스토리다. 원제는 <Gone girl>, ‘사라진 여자’, ‘사라진 아내’다.
사이코패스 같은 섬뜩함만 빼면 영화 주인공들의 싸움은 우리 부부와 비슷한 점이 있다. 사건 추리에 기반을 둔 영화지만 나는 보는 내내 싸우는 부부에 초점을 맞추며 따라갔다. 보편적 부부의 삶을 적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지만 장면마다 나의 결혼생활을 대비해 보았다.
우리 부부 사이에서 달콤함이 사라진 건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첫 아이 탄생에 대한 기쁨이 물론 컸지만 양육 방법에서 관점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내가 아기 옷을 예쁘게 입히려 하면 남편은 편하게 입히길 원했다. 아기를 아기침대에 따로 눕히느냐, 부부침대에 같이 재우느냐 하는 것 등 사소한 문제들이 우리를 미로에서 헤매게 했다. 작은 파도에 폭풍우가 겹친 듯 갈등이 커져 아기를 업고 비를 맞으며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다.
육아경험이 없는 나는 책에서 일러주는 대로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편은 조금 융통성을 살려 어느 정도 원칙에 준하면 된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터무니없을 만큼 감성적인 모성, 다소 겨울 빙벽 같은 이성적 부성과의 대립이었다. 서로 자기주장만 할 줄 알았지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생각은 부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가정이라는 밭(田)을 경작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할 십(+)은 작았고 입(口)만 커서 호모 로쿠엔스의 부정적 측면이 더 컸다. 절대불굴의 원칙 고수와 이기적 본성만 있었고 소통의 기술은 없었다. 신혼 초에 꿈꿨던 유토피아, 가정의 텃밭을 지상의 낙원으로 만들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말을 잘못해서 고통을 겪는 인간, 고난의 무게를 피할 수 없으리라. 모든 분쟁의 씨앗이 바로 그 입이라는 것. 입의 오작동, 오발탄으로 인해 폭설에 한파가 겹치고 쓰나미에 지진이 잇따른 꼴을 여러 번 경험해 보았으니 할 말도 많으나 그 또한 자제해야 하리라.
언어야말로 인간 사회에 무한한 발전을 가져온 동력이지만 바벨탑의 단죄도 있었음을. ‘말’과 ‘고난’은 뗄 수 없는 관계. 말! 너로 인해 영광보다는 고난의 지름길로 들어설 때가 더 많았다고 푸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늘…. 영화를 보는 내내 밭 전(田), 이 글자가 줄곧 꼬리를 물었다. 삶이 삐걱거리는 단초는 결국 ‘말’이다.
높은 톤과 뾰족한 각을 세운 언어, 촌철직설이 일상화된 언어, 이성보다 감정이 우세한 언어, 이는 모두 우리가 가꿔 가야할 공동 텃밭을 훼손하는 칼이다.
부부의 밭을 경작하는 데는 관계의 묘가 필요하다. 나의 경작방법만 강요하는 일방통행은 상호충돌과 단절을 불러온다. 말의 관계도 각을 세운 직선보다 곡선, 위로 볼록하거나 아래로 볼록한 포물선형이 나을 것 같다. 물론 포물선 중간에 세로로 직선을 그었을 때 좌우 대칭은 유지되어야 하리라. 평등관계에서의 조화다. 이것이 어긋나거나 대칭에서 멀어지면 궤도를 이탈한다. 둘이 함께 경작하여 양질의 수확을 보장할 수 있는 땅을 버려진 사막으로 파탄 낼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한계다.
이제 베테랑부부가 될 만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영화를 본 그날도 궤도를 이탈했다. 영화를 본 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서로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날따라 휴대폰도 놓고 나가 둘 다 한참동안 엇갈린 길에 서 있었다. 나는 극장 앞에서, 남편은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큰 소리를 냈다. 그 일로 며칠 동안 냉전을 했으니 두 손 잡고 영화관에 간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아직도 부정적 언사에 치우쳐 길을 잃을 때가 종종 있다.
신이여, 앞으로도 입은 작동할 테고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싸움도 품격 있는 지적놀이로 격상시킬 수는 없는지요. 기상천외한 묘 한 수를 부탁하오니 거절은 말아 주세요.
‘입은 부디 각고면려刻苦勉勵하여 용도폐기 직전인 부부관계 지침서에 충실하고, 부부의 연을 이어가 ‘나를 찾아줘’가 아니라 ‘우리를 찾아봐’에 더욱 만전을 기하도록 : 언어의 톤은 낮출수록, 언어의 각은 둥글게 다듬을수록, 촌철직설 언어는 부드러운 은유로 묘사할수록, 언어의 모양은 진솔한 입술로 만들수록 입 구(口)자의 그 입은 고통의 감옥에서 해방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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