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17년 [여행작가] 5~6월호에 신작에세이 <무하유지향으로> 발표

율리안나 2017. 5. 24. 23:54

무하유지향으로
장금식

하늘은 운무로 덥혀 있다. 오색 천등이 하늘여행을 떠난다. 안개 속에 뜬 달과 같다. 지상에서 바라보는 저 여행자들, 오체투지 대신 오체투공을 한다. 알록달록 형형색색, 보호색이나 경계색도, 인위적인 그 어떤 색도 필요 없는 천등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으로 떠난다.
대만 스펀[十分]에서 천등 날리기. 핑시선 시골 기차를 타고 내린 스펀은 작은 마을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예로부터 도적떼의 습격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산으로 피신을 했고 마을에 남은 가족들이 안부를 적어 등불에 띄워 보낸 게 천등의 유래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천등 날리기는 인기 있는 문화 축제로 전 세계인들을 이 마을로 부르고 있다. 하필 내가 도착한 날,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흐린 날의 몽환에 젖으며 나도 천등 하나를 띄운다.
천등이 될 커다란 비닐을 파는 가게가 좁은 기찻길 옆으로 죽 늘어서 있다. 유달리 친절한 상인의 호객에 그만 발이 붙들린다. 납작 엎드린 붉은 사각비닐을 일으켜 세운다. 일자형 행거에 빨래집게로 고정한다. 앞뒤, 좌우, 바스락대던 네 면이 소리를 멈추고 붓에 제 몸을 맡긴다. 사각의 얼굴이 내가 쓸 글귀를 기다리며 ‘당신은 행복한가요?’ ‘무엇을 갖고 싶으세요?’ ‘소원을 말해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볼륨이 들어가니 살짝 곡선으로 몸을 바꾼다. 붓을 든 나는 부풀어 오른 네 면에 비뚤배뚤 서툰 글자로 마음 속 말을 버무려 소원을 써 내려간다.
한 면 한 면마다 자작자작 글자가 늘어난다. 장독대 앞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어머니의 마음만큼이나 간절하다. 먹을 찍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들여 적다보니 네 면이 가득 찬다. 붓을 놓고 먹물이 흐르는 글씨를 말린다.
붉은 비닐이 점점 탱탱하게 부풀기 시작한다. 글자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욕망이 아닌 소원을 담은 그림이다. 가족의 안위와 건강을 기원하는 소망이 한 편의 시가 된다. 이 천등은 곧 윤무輪舞를 시작할 것이다.
내 옆의 여행객들도 천등준비를 한다. 사람마다 소원이 저렇게도 많다니! 민둥산처럼 허허로운 삶을 수목이 꽉 찬 푸른 산으로 채우고 싶은가보다. 희로애락, 생로병사에 갇혀있던 단어들을 훌훌 털어내고 저마다 발원發願을 띄워 보낸다. 그들의 천등도 나의 천등도 소원의 무게로 무겁겠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활짝 웃는다.
천등에 불이 붙는다. 웅비하는 그 기세가 아름답고 장엄하다. 완성된 천등은 예행연습을 하듯 위 아래로 한 번 주춤거린다.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내며 잠시 펄럭거리더니 사뿐히 날아간다. 그 바람소리는 사바에서 읊조리는 인간 삶의 우여곡절이고, 소원을 약속하겠다는 의지이며 묵언의 위안이리라.
깜깜한 밤하늘이었다면 저 등이 별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빛과 어둠이 한 몸으로 부비며 일상에 얽힌 소망매듭을 줄줄이 풀어내리라. 가슴에 묻어두고 삭히면서 피운 꽃으로 어우러진 그 아름다움이 하늘을 더 빛낼 것이다.
타는 불꽃이 영원하면 좋으리. 언젠가는 하늘에서 제 몸 태워 한 점 재가 되리라. 인간을 위한 자기희생의 불꽃이었다가 소신공양하는 수행자의 몸짓이 되고 말리라.
목적지도, 시간의 제약도 없이 자유인이 된 천등, 제 몸 가득 인간의 사연을 싣고 춤을 추며 어느덧 내 시야에서 멀어진다. 저 멀리 하늘 한 곳에 점묘화를 그릴 때까지 내 눈과 마음도 따라간다. 날것이든 무르익은 것이든, 소망은 풍등이 되고, 풍등은 천등이 되었다.
소원을 가진다는 건 살아 있음이요,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소원은 나약한 인간의 몸짓과 소박한 심성에서 오는, 낮은 자의 부드러운 외침이다. 성취에 상관없이 그 행위 자체가 행복을 준다.
천등을 날리면서 나는 소원의 글귀가 되었다가 불꽃이 되었다. 천등이 되었다가 바람이 되었다. 다시 새로운 길을 찾는 바람이 되어 스펀을 떠났다. 언젠가는 무향, 무취, 무원인 곳으로 떠나는 게 나와 너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소박한 삶이 아닐까. 그곳이 바로 인간의 본향, 무하유지향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