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17년 [선수필] 여름호에 신작에세이 < 사쿤탈라에서 니오비드까지> 발표

율리안나 2017. 5. 29. 23:02

사쿤탈라 Sakuntala에서 니오비드Niobide까지
장금식

어두운 밤도 마다 않고 그녀는 흙을 찾아 나선다. 조각을 향한 끈끈한 야망이 흐른다. 밤의 절벽 앞에서 번뜩이는 천재성이 욕망을 부채질한다. 그 욕망을 뒤로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질퍽한 절망과 마주한다. 야망, 욕망, 절망, 3망望의 삶! <사쿤탈라>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중년> <상처입은 니오비드>, 이 조각품 안에 그녀가 있다. 프랑스의 천재 조각가, 까뮈유 끌로델!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 파리 로뎅 박물관에서였다. 주로 로뎅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쪽에 연인이었던 까뮈유의 작품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 속에 가장 각인되었던 작품이 <사쿤탈라>였다. 이번에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사쿤탈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로뎅과 사랑을 나눈 생의 절정기에 만든 작품이다.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부둥켜안고 있다. 여자가 받침대 위에 앉아 무릎 꿇은 남자와 머리를 비스듬히 맞댄다. 양손으로 여자를 안고 있는 남자의 왼쪽 엉덩이에 근육이 불뚝 불거져 나와 있고 여자의 오른쪽 장딴지와 종아리에 는 적잖은 힘이 들어가 있다. 장식 조명등이 살며시 눈을 가리고 알몸을 비춘다. 침대 위가 아닌 게 오히려 오감을 자극한다. 마주한 다른 조각품들이 오르가즘을 느낄 만큼 생생하다. 흙으로 빚은 한 편의 사랑 시 같다. 사랑의 강렬한 밀도가 차가운 청동에서도 열기를 뿜는다.
궁금증이 몰려온다. 까뮈유는 왜? 버려지고 잊혔다가 다시 찾게 되는 사랑의 주인공, 사쿤탈라를 조각했을까. 사랑하고 있으나 불안의 끈이 한쪽을 잡아당기고 있었던가. 일시적 사랑이 아닌 영원성을 갈망하며 자신의 상태를 “내면의 조각”으로 표현하고자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복선이 깔려있는 듯 열기 뒤에서 냉기도 느껴진다.
까뮈유는 스무 살 연상인 로뎅의 연인이다.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은 냉혹했다. 여성 예술가에 대한 편견 또한 부추겼으리라. 가족부터 관대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외면과 냉소가 무엇보다 참기 어려웠을 게다. 겉으로는 작품 완성에 혼신을 기울이는 듯 하지만 그것은 내면을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때부터 생의 좌표가 통 채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 빚은 작품,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에 힘들고 지친 사랑의 흔적이 흐른다. 대리석으로 제조한 제2의 <사쿤탈라>다. 고단한 사랑이라도 영원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가보다. 사랑은 아름다움에서 슬픔이 된다. 사랑과 슬픔과 고통은 비장미 안에서 동궤가 된다.
그녀의 사랑은 10년 정도 지속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은 텅 빈 들판에 내리는 눈발 같다. 그러한 사랑을 보여주듯 <중년>에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얼크러져 있다. 로뎅과 동거녀인 뵈레, 그리고 까뮈유, 이 세 사람 사이의 삼각관계를 빚은 작품이다.
중앙에 서있는 남자의 양 어깨 뒤에서 한 여인이 남자의 손을 끌듯이 잡아당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다. 남자의 시선은 어깨 뒤의 여인을 바라보고, 남자의 왼손은 무릎 꿇은 여자 쪽으로 뻗어있다. 무릎 꿇은 여자는 애소하듯 양손을 남자 쪽으로 내민다. 남자의 왼쪽 손을 잡으려 하나 잡히지 않는다. 영혼의 조각을 빚어내던 까미유의 무릎 꿇은 모습에서 자존심은 흔적조차 없다. 불안한 사랑의 포로가 된 여인의 눈은 가려져있다. 석고상 눈동자에서 칼질하는 소리와 날카로운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실연당한 사람이 상대를 붙잡고 애원하는 실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프랑스 전 기 작가이자 소설가인 도미니크 보나(Dominique Bona)의 <위대한 열정>에서, 남동생 뽈 끌로델이 누이의 운명적 자전적 생애, <중년>에 대해 말한 것을 옮겨 놓았다.
“이 벌거벗은 비극적인 젊은 여인은 바로 내 누이입니다. 오만하고 당당한 그녀가,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는 모습으로! 이제 모든 게 끝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영원히 자신을 바라보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이 속에는 영혼과 천재성, 이성, 아름다움, 삶, 그리고 그녀의 이름 그 자체가 녹아 있습니다.”
그 통한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까뮈유의 삶에서 로뎅은 처음엔 스승이었다가, 동료였다가, 경쟁자였다가, 원수가 된 사람이다. 그 당시 로뎅의 손을 거쳐야만 조각품이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사회적 통념이 그녀를 분노케 했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상처 입은 니오비드>다. <중년> 이후, 아틀리에에 자신을 가두어버리고 가장 비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오른손으로 오른쪽 젖가슴을 잡은 채, 왼팔은 힘없이 아래로 늘어뜨린다. 머리는 왼쪽 어깨 위에 기대어있고 머리카락은 산발이다. 사랑하는 자녀를 모두 잃고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여인의 이미지가 처절함과 절망으로 가득 차있다.

그녀의 생명은 흙이었다. 흙은 그녀의 영혼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머문 자리를 털어버리지 못하고 회오리와 폭풍 속을 돌고 돌았다. 갖가지 비극의 언어로 얽힌 매듭을 영영 풀지 못했다. 한 남자를 사랑한 대가로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생의 말년을 보낸 차디찬 정신병원에서 마음의 문을 닫고 조각에 대한 열정과 사랑도 완전히 감금시켰다.
차갑고 딱딱한, 외롭고 쓸쓸한,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어두운 겨울의 삶을 살았다. 광기어린 예술의 혼, 저주받은 사랑으로 하루하루 석고처럼 굳어져 가는 삶을 살았다. 한 남자를 온전히 사랑하다가 버림받은 한 여인을 오늘 다시 만났다.
파리 한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슬픔으로 조각했을 그녀를 가슴에 안고 미술관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참고도서
박숙영, 『프랑스 인체 조각』, 학연문학사,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