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이여, 안녕!
이상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혹시 콩쥐 신세가 되면 어떡하지.’ 막연한 상상을 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자초하며 밤새 이불을 적신 적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스레 불안해지곤 한다.
나 자신이나 가족과 관련되는 일에 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식물 때문에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집 행복나무, 해피트리가 영 신통치가 않다. 한쪽 가지의 잎들이 축 늘어진 채 낯을 못 들고 있다. 양쪽 옆으로는 벵골 고무나무와 관음죽이 있는데 그들에게 행여 원인모를 시들병이 옮겨 붙을까봐 안절부절하며 시시각각 잎을 들여다본다. 아무리 봐도 주위에 독이 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크기로 봐도 곁에 있는 두 나무가 오히려 해피트리의 위엄에 미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고무나무의 널따란 이파리에 지레 기가 죽었나. 아니면 관음죽의 빳빳하고 뾰족한 기세에 눌리기라도 한 것일까.
외면상 뒤쳐져 보이질 않는데도 저렇게 죽어가니 혹시 속으로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게 아닐까. 잔가지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커다란 몸집이 속수무책, 통째로 흔들린다. 아픈 감정을 저리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가. 즐거워서 춤을 춘다고만 생각한 것이 상호 불통이었나. 제 본연의 땅인 대자연에서 숨 쉬지 못하고 콘크리트 벽 안에 갇혀 있어 본향이 그리워서 시들어가는 것일까. 내가 말 못하는 나무를 공연히 아프게라도 했나싶어 미안함까지 든다.
베란다에 있는 나무들이 함께 병이 들까봐 걱정하면서 한 잎 한 잎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잎을 살짝 뒤집어 보니, 아이쿠, 이런! 온통 진딧물 범벅이다. 꼼짝 못하도록 숨통을 틀어막고 잎을 꽉 죄고 있었네. 얼른 약을 사다가 낱낱이 뿌렸다. 며칠 뒤, 다시 보니 띄엄띄엄 검은 점들이 약을 우습게보듯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 봐라. 어쩜 이리 당돌한가 싶어 급기야 휴지로 이파리 하나하나를 뒤집어 닦아내기 시작했다. 두 단계 소탕 작전에 성공하고 드디어 해피 트리는 진딧물에서 해방되었다. 다시 깨끗한 물로 이파리를 씻고 닦아주었더니 반짝 반짝 초록 잎으로 되살아났다.
훼방꾼 진딧물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지만 해피 트리는 일단 새롭게 태어나 예쁜 제 용모를 되찾았다. 사랑스러운 이 나무가 죽으면 어쩌나, 불안했던 마음에서 나도 잠시 해방되었다.
해피트리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일이나 꿈에서조차 불안을 느끼는 일이 잦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사회적 관계로 접근했으나 프로이드는 이런 불안 심리를 ‘억압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자아의 처리 방법’ 중 하나라고 보았다. 백배 공감한다. 내게 무슨 억압이 그리 많았을까. 왜 그렇게 방어기제를 튼튼히 쌓으려 했을까.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겪었던 집안의 어려움이 그 원인이었을까.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며 미리미리 그런 억압의 상태를 차단하려는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대충 대충 살자. 까다롭게 굴지 말자. 사는 게 별거 아니야.’ 라며 자신에게 훈수 한 마디를 던지는 이중적 차단막까지 마련하는 건 불안 심리를 완화하려는 시도일까.
해피트리에 붙어 있던 진딧물처럼 나의 내면을 괴롭히는 불안감, 진딧물이 사라지듯 불안을 완전히 제거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키르케고르의 불안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그는 불안과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나의 불안이 나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미래는 시간에 맡기자. 해피트리를 좀먹는 진딧물 같은 불안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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