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기행수필
(부제:낯선 풍경 앞에서 내면을 쓰다)
장금식
기행수필 쓰기를 위한 ‘쓰기의 기술’ 같은 특별한 것은 없다. 프랑스 문예사조 상 19세기 후반부에 사실주의가 들어서면서 플로베르는 이전 사조의 글쓰기와 다른 국면을 보여줬다. 그는 이전의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 바꾸어 글쓰기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무엇을’에서 ‘어떻게’에 대한 답을 모색하며 소설 쓰기를 전향했듯이 여행도 종전의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어떻게, 왜’ 여행을 떠나는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어디로’ 중심이 아닌 ‘어떻게, 왜’를 질문하며, 기행수필을 써야 한다는 맥락을 이어갈까 한다.
먼저, 요즘도 기행수필을 기행문과 혼동하며 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완전히 다르다. 기행문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여행, 결혼기념일이나 축하할 어떤 날을 위해 여행한 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글이다. 일정이 중요하게 들어갈 수 있다. 기행수필은 여행 블로그 글이나 여행기를 넘어 문학적 형태로 남아야 하고 여행을 소재로 하는 하나의 수필 문학이 되어야 한다. 본격 수필 한 편을 쓸 때처럼 문학이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 여행 장소를 배경화면으로 놓고 글을 쓰면 일반 수필과 결이 달라진다. 글과 풍경을 합쳐놓은 글 풍경, 글 그림이 되며 글도 읽고 풍경도 감상하는 것 같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획득하는, 훌륭한 문학작품이 될 수 있다.
물론 여행 후, 작가로 돌아와 그동안 보고 느낀 것을 쓰려면 쉽지 않다. 사유를 확장하고, 인식을 변화해서, 거기다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담은 수필 한 편 쓰기는 어렵다. 그럼 어떻게 글 그림 같으면서 진부하지 않고 색다르게 쓸 수 있을까? 여행 떠나기 전 가방을 꾸릴 때부터 여행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꾸려야 할까?
1. 복잡한 감정 버리고 떠나기
1) 두려움, 고달픔, 괴로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여행을 떠날 건가?
일상에 얽힌 복잡한 감정을 다 내려놓아라. 고달프다, 괴롭다, 힘들다, 등 이런 감정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다 버리고 가방을 꾸리는 게 좋다. 머릿속을 싹 비우는 게 중요하다. 머릿속이 복잡하면 여행지에서 보는 것이 좋은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투명하지 않으면 멋진 장소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안개 낀 듯 뿌옇게 보인다. 우리는 여행자 이전에 작가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봐야 한다. 시각으로 본 것이 사유로 연결되어야 여행 떠나기 전 내 삶에서부터 나를 변화할 무엇을 찾을 수 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나 비행기 안에서 계속 걱정거리를 만들어낸다. 가스 불을 껐던가? 여행지에서 길을 잃거나 도난을 당하면 어떡하지,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등, 이와 같은 많은 걱정을 내려놓고 복잡한 감정에서 자신을 해방하라고 말하고 싶다.
2) 길을 잃을까 봐 두려운가.
『길 잃기 안내서』(리베카 솔닛)나 『일부러 길을 잃다』(서숙) 같은 책은 제목만으로도 예비 여행자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어디로 가야 목적지를 잘 찾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길을 잘 잃을까’가 핵심이고 무엇보다 두려움을 없애고 ‘여행’에 대한 시선을 거꾸로 하고, 역설에서 어떤 힘을 얻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물리적 길만이 아닌 삶의 방향이나 중심축을 잃을 때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가장 큰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그 상황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의 한 예를 들어보자면, 오래전, 남프랑스 니스에서 렌트카로 여행했을 때, 아찔했던 일을 겪은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렌트카를 전해 받은 남편이 브레이크를 걸고 시운전을 하나 자동차가 계속 뒤로만 갔다. 이유는 자동에 익숙한 남편이 수동 작동을 잊은 것이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우리 렌트카 뒤로 수십 미터나 차가 줄지어 있었다. 당황한 순간, 옆에 앉은 내가 자동차 밖으로 나가 길 가던 여행자를 붙잡고 무조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마침 이탈리아 여행객이 수동 작동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둘이 손을 꼭 잡으면서 ‘그 순간만큼 둘이 하나 된 순간은 없었다’고 동시에 말하며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일을 만들려면, 일부러라도 길을 잃어보든,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움 대신 차분히 문제 해결을 하며 ‘사람 사는 곳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겠어. 다 잘될 거야’라며 긍정적 주문과 위기를 즐기자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위기가 오히려 기억에 남을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미지의 장소에서 나를 확장하기 위해 낯선 장소를 빨리 익숙한 장소 속으로 밀어 넣기다. 잠시 머무는 장소일지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불편한 것과 동거하기가 쉽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드 보통은 여행을 “자신과 내적인 대화를 끌어내는 생각의 산파”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나는 ‘불편함과 동거’라고 개념을 정리하고 싶다. ‘불편함’을 전제로 달고 시작해야 실망도 적고 긍정의 시선으로 많은 것을 보고 얻게 되기 때문이다. ‘어디로’가 정해지면 그 장소가 ‘여행자인 내가 되도록’, 그 장소가 ‘여행자인 나를 찾게 하도록’, 그 장소가 ‘여행자인 나의 내면을 깨우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면 좋겠다. 여행 초기에 몇 군데를 둘러보면 나름대로 규칙이 생긴다.
2. ‘어떻게, 왜’로 질문하기
가는 장소마다 의문부호를 주렁주렁 달아보면 어떨까. 배낭도 무거운데 의문부호까지 달면 더 무겁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마 많이 달수록 우리 영혼의 무게 0.5g만큼 배낭은 가볍고 정신은 풍요로워질 게 분명하다. 의문부호를 강조하면서 감탄부호는 자제하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멋진 장소, 역사적인 건물이나 왕궁, 아름다운 대성당 앞에서 감동을 많이 하게 되는데, 감탄부호의 과잉은 아마 감정의 걸림돌에 걸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 미리 붙여놓았던 의문부호를 놓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아! 우와! 대단해! 어머머머! 놀라워!’ 등 입으로 느낌표를 붙이다 그만 끝날 수 있다. 수많은 감탄사를 붙인 장면에서 딱 하나만 붙들자. 하나만 잡고 끝까지 밀고 나가고, 나머지는 먼 훗날을 위해 몽타주로 숨겨놓으면 되겠다.
예를 들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소설 배경지인 파리 근교, ‘루앙’ 도시에 간다. 봐야 할 곳, 감탄사 연발의 장소가 너무 많다. 플로베르 아버지가 의사로 근무했던 루앙시립병원이었던 곳, 지금의 ‘플로베르 박물관’ 하나. 모네가 빛의 각도에 따라 수많은 연작을 그렸던 ‘루앙 대성당’ 둘. ‘플로베르 묘지’ 셋. 실제 사건이 벌어지는 소설 속 용빌 마을인 현재 뤼(Ry) 마을 넷, 등 욕심낼 장소가 많다. 욕심대로 본 것을 한 작품에 다 넣으면 글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한 작품에 딱 한 장소만 붙들고 집요하게 쓰자. ‘이 소설이 보여주는 욕망과 환상, 허영의 본성을 지닌 한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바라보고 보바리즘을 끌고 오기엔 Ry 마을이 좋겠다.’로 정해지면 하나의 소재에만 집중하자는 것이다. 여러 소재를 하나로 압축하면 깊고 넓은 사유와 함께 서사를 펼칠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많이 내 깊으면서 쉽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
3. 감각형 여행자와 사유형 여행자
여행하다 보면, 지나치리만큼 또렷해져 오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의 눈속임에 작가의 눈이 멀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밀어낸 느낌표 자리에 도돌이표를 반복해서 작동하면 그 하나의 풍경이 내면의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우리 눈이 이미지를 기억하고 예민하게 스캔해서 생각을 언어로 조합해주며 풍경 서사를 생산하게 한다. 이때 장소 중심 프레임을 벗어나 장소가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주인공은 ‘나’, 조연은 ‘풍경’이 되란 뜻이다. 주체는 ‘어떻게, 왜’라는 질문이다.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다. 예를 들어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미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풍경 중심’의 감각형 여행자와 ‘어떻게, 왜’라는 질문에 초점을 두는 사유형 여행자는 서로 다른 결의 글을 쓰게 될 것이다.
1) 감각형 여행자
아름다운 풍경과 미술 작품이나 멋진 건축양식에 빠진 감각형 여행자는 노트르담의 장미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 ‘우와! 멋지다. 빛이 나를 압도하네. 가슴이 벅차 주체하기 힘드네! 심장이 멎을 것 같아!’라며 느낌이 먼저 오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여행 방식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마음과 피부로 느끼고, 순간에 몰입한다. 감동은 깊고, 기억이 오래 남을 수 있다. 오감을 자극하며 여행을 즐긴다. 삶의 위안을 소소하게 얻을 수 있으나 왜 감동했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흐려진다는 단점을 가질 수 있다.
2) 사유형 여행자
반면, ‘어떻게, 왜’를 묻는 사유형 여행자일 경우 조금 다르다. ‘왜 장미 창은 둥글게 그려졌을까?’ ‘왜 색깔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나갈수록 진하며, 왜 나에겐 유독 보랏빛이 눈에 띌까?’ ‘중세 사람들은 이 장미 창 앞에서 무얼 위해, 누구를 위해 기도드렸을까? 저 높은 곳을 향해 어떻게 기도했을까?’ 등 질문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다. 감동 차원을 넘어 본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역사, 종교, 철학, 미학과 연결해 생각의 저장고를 채운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세상을 재해석하는 사람의 유형이다. 자신의 내면적 변화에 더 집중한다. 잠시 감동의 순간을 놓칠 수는 있겠으나 본 것에 관해 폭넓은 이해, 많은 이야깃거리, 확장된 사유를 획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
다시 정리해보면 풍경에 빠진 감각형 여행자는 출발점이 감정이고, 느낌으로 반응하고, 현재가 중요하고, 이미지와 감정을 기억한다. 삶의 활력과 생생한 즐거움을 얻는 반면, 사유형 여행자는 출발점이 사유가 된다. 느낌으로 반응하기보다 해석하고, 현재 중심보다 큰 역사적 맥락을 보고, 의미와 이야기를 기억한다. 새로운 시각을 선물 받는다. 작가는 철학적 성향을 지닌 후자의 여행자가 되는 게 좋겠다. 풍경은 또렷하나 작가의 눈과 마음이 흐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3) 감각형 여행자+사유형 여행자
마지막으로 기행수필을 잘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감각형 여행자+사유형 여행자’를 합쳐보자. 더 깊은 글을 쓸 수 있고, 경험의 스팩트럼이 더 넓은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이 장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왜 내 마음을 울릴까?’처럼 먼저 풍경에 풍덩 빠져보고, 그다음 질문하기다. 즉 감각과 사유가 합쳐져 나올 때, 발은 현지 여행지에 단단히 붙이고 머리와 마음은 자유롭게 세상을 읽고 쓰며 글, 사색, 인생관, 통찰로 남는 한 편의 기행수필을 완성할 수 있다.
감각형 여행자는 ‘여행을 본다’로, 사유형 여행자는 ‘여행을 읽는다’로, 감각형+사유형은 ‘여행을 쓴다’로 정리해볼 수 있다.
4. 발로 글쓰기
1) ‘어디로 갔는가’가 아니라 ‘그 장소가 나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었는가’
발로 글쓰기에는 정보가 많을수록 깊은 글이 잘 안 나오고 오히려 방해요소가 된다. 인터넷상에서 감탄과 정보가 쏟아지는 글이 많을수록 그것을 미리 읽으면 수필다운 글이 안 나온다는 뜻이다. 깨알 정보가 노출된 장소에 대해 읽지 말고 사유 중심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며 나만의 장치를 만들어보자. 장소 대신 나, 기억, 죄책감, 두려움, 욕망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려놔 본다. ‘아름다운 장미 창’이 아니라 ‘이 장미 창과 웅장한 성당에서 나는 왜 고개를 들지 못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라는 것이다. ‘나’가 아니라 ‘나의 흔들림’, ‘감정’이 아닌 ‘감정이 생긴 이유’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 그러면 내면의 울림에서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미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오늘 하루의 빛이 아니다. 수백 년의 빛이 내 가슴을 관통하는데 빛이 많이 들어올수록 나는 한없이 어두워진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장미 창 앞에 있는 미물 같은 나도 신이 만들었는가.’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이 화려한데 내가 살아온 삶도 이처럼 화려했던가. 오히려 초라한 생각이 들어 갑자기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장미 창을 통해 부서진 햇살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그 순간 축적돼 있던 내 슬픔이 햇살 가닥 하나하나에 스며들며 풀려나오기 시작한다.’ ‘수 세기를 이어온 기도와 나의 화살기도 한 자락, 두 기도가 햇살과 그늘을 대비한다.’ ‘나는 장미 창 앞에서 오늘 이 시간 살아있음에 감사의 전율을 느낀다.’
풍경(장미 창)+감각(빛, 색, 온기)+내면의 변화(깨달음, 슬픔, 경외, 감사)가 일어나 ‘붉은빛이 내 눈에 스며들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동시에 깨어난다.’로 정리해 볼 수 있다.
2) 이 장소는 나를 편안하게 했는가, 불편하게 했는가
이 장소는 나를 편안하게 했는가, 불편하게 했는가에 대한 답을 발로 써본다. 걸으면서도 계속 머릿속에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발걸음에 맞추어 따닥따닥 지면을 채워야 한다.
첫째, 빛이 내 마음을 녹여줘 편안했다는 경우, ‘장미 창의 빛이 나를 감싸 안듯 나에게 다가왔다. 오래 움켜쥐었던 내 슬픔이 녹아내렸다. 나는 말 없이 그저 장미 창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둘째, 나를 너무나 명료하게 들여다보게 해 오히려 불편했다는 경우, ‘화려한 빛 앞에서 내 삶의 균열과 누수가 더 또렷해져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부끄러워 빨리 성전에서 나오고 싶었다.’
편안했다면 치유 수필을 기대해볼 수 있고, 불편했다면 사유수필을, 둘 다 있었다면 위로와 성찰을 줬을 테니 두 개를 아우르는, 깊이 있고 성숙한 수필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3) 여행자의 시선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초점을 다르게 하기다. 관광객은 장소를 확인하고 그 장소에 관해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한 컷을 남긴다. 장소에만 시선을 두고 장소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트르담 장미 창 앞에서,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사진을 찍는 순간 그 배경은 기념품이 된다.
반면, 여행자는 장소와 관계를 맺고 왜 이런 대성당에 장미 창을 만들었을까, 중세인들은 저 장미 창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기도했을까, 상상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연결한다. 같은 장미 창 앞에서 ‘왜 이 빛은 나를 흔드는가’라고 묻는 순간, 그 배경은 질문이 된다. 여행자의 시간은 느리고, 공간 배경은 빠르게 사유의 깊이로 확장된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관광객은 외부를 보고, 기록하고 소비하며 장소를 통과할 뿐이라면, 여행자는 배경과 풍경을 자신과 함께 보고, 건축물이나 예술작품을 보고 해석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 장소에 머무는 사람, 공간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4) 숨은 공간 찾아가기
유명한 박물관이나 랜드마크를 피하는 게 좋다. 여행 블로그나 가이드 책자에 잘 소개되어 있어 내 발은 틈새를 찾아 한 뼘 공간 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뒷골목, 벼룩시장, 센 강변 헌책방, 허름한 카페, 묘지 등을 찾아보면 많은 질문을 만들고 답하며 여행지를 진정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 중심에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들렀을 때,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그냥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가?’ ‘그간 내 욕망이 얼마나 컸던가?’ ‘보들레르, 사르트르, 베게트, 모파상 등 작가는 갔으나 작품은 살아있는데 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묘지에서 두려워하는가? 두렵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묘지는 내 삶의 어느 장면과 닮았나?’ 등 수많은 질문을 해보면 묘지가 죽음의 공간이 아닌 사유하는 공간으로 인식이 바뀌게 된다.
5. 기행수필을 살리는 장치
1) 여백 남기기 장치
기행수필에서 장소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을 다 하지 말고 결핍 같은 여백을 남겨두면 좋겠다. 잘된 기행수필은 여백의 미가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Iceberg Theory)을 빌려 표현해보면, “작품에서 보다 깊은 의미는 노골적으로 표면에 드러나서는 안 되고 내포와 암시를 통해 빛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빙산 이론에서 수면 위의 빙산은 작가가 직접 드러내야 할 표면적 요소이고, 수면 아래에 은밀히 감춰진 빙산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다 깊은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다음백과)
독자는 30%만 보고, 70%를 느끼게 된다는, ‘다 쓰지 말고, 느끼게 하라’는 이론이다. 헤밍웨이는 작가가 배경 지식이나 인물의 감정을 완벽하게 알고, 그걸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과감히 생략하더라도 독자가 글을 읽을 때, 그 숨겨진 무게와 깊이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독자가 여백을 채워가며 읽을 때, 맘껏 상상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줄 수 있고, 작품의 감동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빙산 이론을 적용하면 글이 깊어지고, 오래 남고, 다시 읽히는 문학이 된다. 이 이론을 적용하지 않으면 글이 설명문, 감상문, 일기, 후기가 되어버린다. ‘잘 쓴 글’ 한 편이 ‘오래 남는 글’로 끌어올리는 장치가 바로 여백을 남기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센 강변에서 화려한 조명을 등에 업고 유람선을 타고 환호하는 관광객을 볼 때, ‘저 사람들은 저렇게 기뻐 보이는데 나는 외롭기 한이 없다. 이 먼 곳까지 와서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 정말 마음이 허전하기 짝이 없다.’라고 쓰면 글쓴이의 마음을 다 이야기해버려 여운이 없는 글, 매력을 잃을 수 있는 글이 된다. 대신, ‘센 강변에 앉아 있던 그날, 화려한 조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멍하니 불빛에 반사된 윤슬만 바라보았다.’라고 묘사하면 굳이 ‘외롭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는 글쓴이가 참으로 ‘외롭구나’를 느낀다.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기행수필이 더 잘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2) 장소는 대화 상대로 말 걸기 대상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참조해보면, ‘장소는 말 거는 존재이고, 나는 응답하는 사람이고, 장소는 내 생각과 섞일 때만 의미 있다.’로 의미부여 했듯이 ‘노트르담 성당이 웅장하고 아름다웠다.’라는 평범한 표현을 ‘노트르담 성당은 나에게 오래된 침묵을 건넸다.’로 표현하면 장소가 풍경뿐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하나의 존재가 된다. 장소와 대화하면서 장소에 생명을 불어넣어 활유하고 장소를 인격화하기 때문이다. 풍경과 내 상태가 어우러져 하나의 문학, 기행 문학이 되어 사실상 ‘풍경을 빌린 발로 글쓰기’의 고품격 기행수필이 될 수 있다.
3) 여행을 이동성보다 내적 변화의 서사로 만들기
노래 한 곡을 ‘4~5분간의 짧은 드라마’라 하듯이 기행수필 한 편도 단편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나’는 출발 전에 온전히 비워진 상태에서 떠난다. 웅장한 건물이나 유명 화가의 작품 앞에서 ‘나’는 흔들리고 내 삶의 균열을 발견한다.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하면서 변화된 ‘나’를 찾는다. 이렇듯 장소는 드라마가 펼쳐질 무대이고, 드라마 주인공인 변화된 ‘나’는 드라마 내용의 중심인물이 된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내적 변화에 대한 서사의 주인공이 되면서 변화된 내가 기행수필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
6. 기행수필을 망치는 습관
못 써서가 아니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써서 망친다.
1) 여행 일정 쓰지 말자.(1일 차~ 2일 차~~~)
2) 정보 과잉을 피하자. 인터넷을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다 나온다. 가이드북이 아니다. 독자도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사유는 검색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자.
3) 감탄사 남발을 하지 말고, ‘아! 아름답다. 정말, 인상적이네’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한마디도 넣지 말자.
4) 독자가 가장 싫어하는 교훈, 훈계, 설교를 피하자. 굳이 설명해가며 나는 이런 곳에서 이런 교훈을 깨달았어, 라는 말은 시대에 맞지 않는 퇴행적 표현이다.
5) ‘내가 보기엔 한국인이 더 낫다.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야’ 같이 비교하지 말고 자기 과시, 자랑, 문화 우월감 표현은 금지하기다. 편협하다는 인상을 주고, 그러면서 저절로 작품의 깊이가 줄어든다.
6)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자. ‘이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 표현은 문학적 걸림돌이 된다.
기행수필 한 편을 잘 쓰기는 쉽지 않으나 나름대로 도움이 될까 정리해보면서 마무리를 한다. 기행수필은 ‘본 것’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라 ‘본 뒤에 달라진 나’를 남기는 글이다. 장소를 설명하지 않고 작가의 인식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임을 명심하자.
*이 글은 《수필미학》 특강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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