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26년 <<현대수필>> 가을호에 신작 <구멍, 이동의 완성> 발표

율리안나 2026. 9. 14. 07:16

구멍, 이동의 완성

장금식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새벽바람을 쐬려고 신발을 신는 순간 엄지발가락 쪽에 뻥, 뚫린 구멍과 마주했다. 헤어져야 하는 쓸쓸함과 버려야 하는 난감함이 마음속 파문을 일으킨다. 너덜거리고 낡은 몸체가 수명을 다한 것 같다. 작은 빗방울마저 막아주지 못하니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축축함을 말리기엔 역부족이다. 꿰매거나 수선도 불가능해 불편함이 임계점까지 왔다. 해지고 뜯어진 바닥까지 보였으나 퀴퀴한 냄새가 아닌, 세월을 묵히고 숙성된 냄새가 난다.

  그 구멍이 며칠 전보다 왜 더 크게 보이는지, 닳고 닳음에 대한 이동의 역설적 궤적일까. 허술하거나 결핍으로 온 구멍이 아니고, 호기심이 동해 일부러 손가락을 넣어 파낸 틈도 아니다. 갑갑함을 피해 밖으로 나가 발에 힘을 주며 걸어간, 꿈을 이루고자 한 도전의 발자국이라 해야만 할까. 거의 두 달 동안 프랑스를 누비며 함께한 고행의 시간, 내 발과 오래 걷고 아픈 다리와 안간힘을 다해 견뎌온 희구希求의 발자취다. 노마드 피가 흘러 한곳에 머물길 싫어하는, 새로움을 모색하는, 어쩌면 꿈꾸는 인간형의 그 꿈 때문이었으리라. 구멍 난 신발에 내가 담아온 것은 무엇일까.

  어제 모네가 머물렀던 집과 모네가 그린 아르장퇴유 다리가 있는 작은 도시, 아르장퇴유에 들렀던 것도 꿈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과 연관이 있다. 깔끔하고 예술적일 거라는 상상과 달리 사람을 많이 끌어들일 도시는 아니겠다는 인상을 주었다. 특별나지 않은데 왜 모네가 이곳에 7여 년 정도 머물렀을까. 요트, 다리, 철도가 있어 낭만적 운치에 빠졌던가. 센 강변을 산책하며 근대인의 삶이 그리는 풍경 속에서 빨리 시대를 앞지르고 싶어서였을까. 시골이 아닌 파리 근교라 완전한 대자연을 만끽하기에는 좀 아쉽고, 어정쩡한 도시 느낌을 주는데 무어라 합리화를 해야만 하나. 인상주의 화풍이나 그 잔흔이 남아있는 느낌이라고 일부러 의미부여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르장퇴유에 대한 모네의 꿈은 ‘시시각각 포착한 빛을 그려보는 실험실 도시’로 남기는 것일 테고, ‘현대적 삶을 그리는 장소, 인상주의가 완성되는 결정적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겐 현실을 꿈으로 환승해 볼만한 곳임이 분명하다.

  어제 본 도시에서 모네의 꿈, 53일간 프랑스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 호텔에서 두리번거리며 꿈을 의식하는 나와 다른 듯 비슷하다. 신선한 아침 바람을 쐬고 들어가다 호텔 문에 적힌 글귀 하나를 발견했다. “La meilleur facon de réaliser ses rêves est de se réveiller.(꿈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어나는 것이다.)”라고.

  나는 프랑스에서 무얼 할까를 꿈꾸며 매년 두어 달간 머물며 꿈으로 만리장성을 쌓곤 한다. 헛되고 헛되도다, 하면서도 꿈 찾기를 유예하지 않고 이 순간도 주변을 살피지 않는가. 바로 방문 앞쪽에는 포르투갈 가게가 있고, 왼쪽 코너로 돌아보면 어제 갔던 정육점 레스토랑이 있다. 길 건너에는 일본식당과 중국식당이 나를 보며 이른 아침 손짓을 한다. 그 옆에는 세차장이 있고 내 방문 오른쪽 코너엔 대형 가구점이 줄지어 있다. 포르투갈, 일본, 중국 등의 나라가 새로운 꿈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며 넌지시 꿈 주머니에 넣는다.

  지금껏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순간들이 밀도가 높아 그 밀도를 상중하로 구분할 정도로 꽉 찬 삶이었건만 뭘 또 새로운 꿈을 덧붙이려는지. 욕망의 문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려나, 빠져나갈 문이라도 있을까. 욕망을 자꾸 키우고 있으면서 내심 꿈이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좀 전에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는데 금방 다른 커피를 찾는 것과 같다. 갈증과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가 보다. 호텔 주변 풍경을 가슴 한편에 챙겨 넣었으나 또다시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이 풍경을 다르게 키울 것이 있을까, 싶어 자꾸 두리번거린다.

  마음의 시간이란 정지가 없다. 호텔 밖 도로의 떨어져 나간 보도블록도 날마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내일, 또 모레는 번듯한 무엇이 되려고 새로운 꿈을 꾸지 않을까. 더 떨어져 나가 밟히는 조각이 없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 같은 꿈. 보도블록에 비하니 내 생각은 희망도 바람도 아닌 욕망 같은데 욕망을 넘어 귀한 쓰임으로 건너뛸 수 있는 꿈이면 좋겠다. 욕망과 희망, 두 개의 ‘망망’ 앞에서 갈팡질팡 흔들리는 귀국길 아침이다. 마음의 문 이쪽저쪽에서 덜컥거리고 비꺽댄다. 떠남은 출발이고 출발이 떠남이라면 내년에 또다시 올 출발을 계획하려는지 내가 나를 모르겠다. 동료는 아직 자고 있다. 그녀는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을까. 잠꼬대를 예쁘게 하는 걸 보니 욕망 아닌 희망을 꾸고 있나 보다.

  꿈의 포화 상태 때문이었든 닳고 닳아 견디지 못해 터져버렸든 운동화의 형체가 바뀌었다. 구멍 하나 만들며 생의 종말을 고했으나 그 구멍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삶이었다고, 이동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마드 기행에 끝까지 함께 해준 신발, 불완전한 꿈이나 구멍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검정 봉지에 둘둘 말아 짐가방 한구석에 밀어 넣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증거, 꿈을 이어가려는 틈새 전략이다.

 

  내 여행 서사가 담겨있는 구멍 난 신발! 인생이 닳아가며 완성되듯 꿈 또한 닳았다 지워졌다 새롭게 생성되는 순환의 구조를 꿰어간다. 다시 출발한다. 현실로 들어가 ‘꿈을 이루려면 깨어나야지’ 하는 문장을 과감히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