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2016년 [수필과 비평] 12월호에 신작에세이 <발자크의 커피별장>발표

율리안나 2016. 12. 6. 19:59

발자크의 커피별장
장금식

‘커피 향과 늘 푸름이 나를 안아주는 카페, 봄’ ‘베이글 카페’ ‘달달 카페’ ‘포르떼 에스프레소’ 카페를 지난다. 골목길 모퉁이에 ‘발자크의 커피별장’이 있다. 부모사랑을 받지 못한 발자크에게 따뜻함이 묻어있을 것 같은, 동화 속 그림 같은 집, 평생을 한스카 부인을 사모했던 대문호에게 그리움이 피어오를 것 같은 카페 전경이다. 동네 카페 스케치를 하는 중 겨우 서너 개를 지나다 그만 내 마음은 이곳에 붙들리고 만다.
동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본 카페 이름 중 가장 맘에 든다. 주인이 프랑스문학을 전공했을까, 발자크의 작품을 좋아할까. 단 하루도 블랙커피를 마시지 않고 살 수 없었던 발자크. ‘커피 중독자, 커피 마니아’라는 말은 당연히 발자크의 특허쯤 되리라. ‘발자크의 커피별장’ 주인은 그가 하루에 60잔 가량의 커피를 마시며 16시간씩 글을 썼다는 얘기를 알고 있나보다.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바흐도 울고 갈만큼 발자크의 커피사랑은 그의 전 생애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고 노년에 자식들에게 배신당하는, 순수한 아이와 순수하지 못한 어른들의 세계,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고리오 영감>은 19세기에 쓴 소설이지만 21세기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는다. 이를 비롯해, 90여 편을 묶어 만든 걸작<인간희극>을 써 내기까지 일등공신이 바로 커피라는 것. 커피별장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선다.
폴란드 백작부인 에블린 한스카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평생을 보낸 남자. 새로운 삶의 모티브를 주고 사랑의 수호천사쯤 되었을 그녀! 어두운 어린 시절,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삶을 살았던 발자크에게 포근하고 생동감 넘치는 둥지를 만들어준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담은 수많은 편지를 묶어 사후에 발표한 <이국 여인에게 보낸 편지>도 빼놓을 수 없다. 제목만 들어도 로맨틱하고 에로스적 감성이 살아나 느슨한 세포를 하나하나 세워줄 것 같다.
가장 특별하고 가장 필요한 여인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는 커피와 함께 창작 혼을 불태우지 않았을까. 인쇄업 실패로 진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써, 요즘 말로 감정 노동자, 소설 노동자 1호쯤 될 만큼의 불명예도 얻었지만 첫눈에 반할만한 그녀가 없었더라면 발자크가 세계적인 대문호의 명성을 얻었을까. 그녀의 사랑을 얻을 때까지의 기다림이란! 이슬을 머금고 잎을 살짝 벌린 꽃잎이 새하얀 편지지 위를 날아다니는 상상이 몰려온다. 펜 끝의 마술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기까지 사랑의 한계를 넘어 한 인간에 대한 신비적 감정을 갖지 않았을까. 텅 빈 가슴에 포르르 날아들었다가 다시 날아가 버릴지라도 그에게 한스카 부인은 분명 갈망이고 외로움이고 그리움과 애틋함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이국여인인 한스카와의 사랑을 얻어 결혼을 하지만 삶이 아이러닉하다고 했던가. 이국여인에게 사랑고백도, 짧은 행복도 커피가 있어 가능했지만 신은 그에게 카페인 과다 중독으로 오랜 기간 갈구했던 사랑을 이루고 난 뒤 5개월만 행복을 허락했으니. 커피에 살고 커피에 죽은 셈이다.
혹시 카페 주인이 남자라면 발자크 같은 문학성이 있을 테고, 여자라면 발자크로부터 사랑받는 여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닐까, 헛된 상상을 해본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아래, 카페 앞 가로수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나를 이끈다. 카페 문을 연다.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단발머리를 한 여자 주인이다. 단아한 인상으로 인심이 후해 보인다. 정면에 해바라기 꽃 그림과 자전거 타는 연인들의 그림 몇 점이 걸려있다. 그냥 평범한 카페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며 발자크를 잘 아느냐고 물으니 커피 광 정도로 안다고 했다.
분위기로 봐서 카페주인은 문학과 커피에 살 것 같은 이미지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예쁜 잔에 푸짐한 커피 한잔과 초콜릿 하나로 만족했다. 프랑스 사상가, 달랑트가 한 커피예찬도 발자크를 위해 한 말이 아닌가싶어 이 구절을 카페에 붙여놓으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며,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이 말. 발자크에게 딱 맞고 이 카페에 딱 어울릴듯한데 그만 이 말의 매력에 내가 빠져든다. ‘검고, 뜨겁고, 순수하며, 달콤한’ 이 커피에 나 또한 중독되어 대상은 없으나 <이국 남자에게 보낼 편지>라도 남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커피에 섞인 유려한 문장들이 가슴속에 피어날 것 같다.
남자 한스카를 상상해본다고 죄가 될까. 마음속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고여 있다. 습기 먹은 눅눅한 기분에 젖어든 외로움. 우수에 젖은 한 송이 꽃을 향한 그리움. 발자크 식 표현으로 “발랄한 욕망의 빛”을 과감하게 내 보일 수 있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합주하고 싶다. 아스라이 펼쳐진 광대무변의 모래밭에 편지를 써 변주하고 싶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한 송이 꽃으로 육화된다면 얼마나 화려하고 찬란할까. 화려함과 찬란함은 슬픔과 외로움의 또 다른 언어일 게다. 발자크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 커피는 그에게 삶의 완성이고 소멸이리라.
카페를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 더’ 주문한다. 밥 딜런의 “커피 한 잔 더(One More Cup Of Coffee)"가 애잔하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