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중주>
감독; 야론 질버먼
출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기너, 마크 아이반니
2013년 미국 영화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 “푸가”를 결성한 지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푸가의 리더 겸 정신적 스승, 첼리스트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는다.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그러면서 25년간 표출되지 않았던 개개인의 갈등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네 명의 단원들은 베토벤의 14악장을 갈등의 덩어리로 만들 판이다.
왜 인간은 둘 이상이 모이면 갈등이 생길까? 그 갈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타인에서? 인간의 뇌는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갈등을 유발하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다. 한 순간도 생각을 지우거나 정지된 상태로 둘 수가 없다. 사사로운 생각하나가 질투심을 유발하고 질투심은 새로운 공격대상을 찾아 겨냥한다. 그리고 엉뚱한 일을 모색해 자기가 한 행동에 합리화를 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다 나 아닌 타인으로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로버트와 다니엘, 쥴리엣은 애정의 복잡한 삼각관계에 있다. 갈등의 시작은 제 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버트의 질투와 자존심에서 시작된다. 이런 생각들이 다 부질없고 헛된 망상일 수가 있는데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서 빚어지는 감정이 요동을 치고 만다. 생각을 해서 행복한 것보다 불행할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게 있는 단원의 권위는 한 순간 사라진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내 의식으로 이해 불가능한 타인은 지옥일 수밖에. 타인이 위협적이고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수록 나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로버트가 제2가 아닌 제 1의 역할을 꿰차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클수록, 투쟁을 벌여야하는 다니엘은 타인. 나를 인정해주는 타인은 친구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적이 되는 생각의 논리.
베토벤도 아마 분노감이나 슬픔을 포효하듯 음색이 격렬해 질 때는 타인에게 인정받기의 게임에서 괴로움의 표출일까? 베토벤이 현악 4중주 14번을 작곡할 때, 갈등과 불협화음이 바로 인간사라는 것을 암시라도 한 듯 이 영화에서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세 악기가 한데 어우러지지 않고 각자의 소리로 불협화음을 낸다. 삶은 완벽한 화음을 낼 수 없고 불협화음의 연속이지만 화음을 내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면 조화와 부조화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다는, 음악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해준다. 생각에서 비롯되는 갈등. 생각 없애기를 화두 삼아 나의 작은 욕망까지도 버린다면 갈등은 사라지고, 흩어진 모두를 하나로 모울 수 있고 한 그룹의 일부가 아닌 전체가 될 수 있다는 어떤 것.
나는 타인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내 주변의 모두는 타인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언제 타인은 지옥이 아닌 천국이 될 수 있을까. 환상의 꽃비는 언제 내릴까. 신에게 나를 완전히 맡기고 의탁할 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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