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장금식
공원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보랏빛 붓꽃 한 송이가 눈에 띈다. 붓꽃은 대개 땅에 뿌리를 내리지만 경계를 가리지 않고 물속에서도 잘 자란다. 둘러보니 연못가 저만치에 붓꽃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어 있다. 외로운 듯 혼자 피어 있는 붓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때 어눌한 말투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았다. 한 여인이 딸아이와 놀고 있었다. 얼굴이 우리보다 조금 더 구리빛깔이고 검고 짙은 눈동자는 유달리 반짝거렸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신기한 듯 물어보았다. 나도 그 여인이 궁금해서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캄~보디아에서 와쩌요. 저~쪽 주택에서 할머니, 하라버지와 가티 사라요.”
“어유, 쯧쯧. 얼마나 자기나라에서 먹고 살기 힘들면 이 멀리까지 왔을까. 말도 안 통하는데.”
냉소어린 말투를 알아들어서 그런지 그만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 황급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어눌한 그녀의 말이 자꾸 걸린다. 사람들의 질문이 부담스러웠던가보다. 하고자하는 말이 안 되면 횡설수설로 끝나버리겠지. 그러다가 포기하고 싶어 결국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대다수 초보자 외국인의 삶. 캄보디아 여인도 이렇게 해서 모습을 감추었는지 모른다. 다소 불안과 걱정이 뒤섞여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빛은 내가 처음 프랑스에 발을 내딛었을 때의 기억으로 나를 돌려놓는다. 한번은 가디건을 사러 가게에 들렀다. 주인이 다양한 종류와 품질에 대해 무척 빠르게 말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기색을 보이자, 다시 설명을 해주기는커녕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너한테 안 팔아도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처음 체류증을 만들 때도 서류가 부족하다고 트집을 잡으며 다섯 번 이나 돌려보내던 그들. 동양인이라고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을 하며 나를 세워놓고 모멸감을 주지 않았던가. 나는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급히 빠져 나와야만 했다. 나를 향해 몰려드는 시선을 피하고만 싶었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서러웠다. 그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공원 한 모퉁이에서 주변을 빙빙 돌았다. 짙은 녹색을 띈 공원의 잔디와는 달리 내가 서 있는 산책로에는 먼지만 풀풀 날렸다. 나는 그 뚜렷한 경계선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굳게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그 선을 넘고 싶었다.
언어부터 극복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중, 성당단체를 통해 우연히 프랑스 말을 도움 받을 수 있는 꼬린느(Corine)를 소개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고맙고 미안해서 나도 한국음식을 대접했다.
“양파, 당근, 버섯, 소고기가 함께 어우러진 잡채가 맛있다”고 했다.
“김밥도 예술이다”며 극찬했다. 자기도 준비한 것이 있다며 직접 만든 초콜릿무스를 디저트로 내 놓았다.
“내가 초콜릿 무스를 제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더니 웃음으로 답했다.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한국음식을 무척 좋아한 그들이 고마웠다. 드디어 나와 꼬린느(Corine) 사이에도 경계를 허문 예쁜 붓꽃이 피어났다. 음식이 곧 글이 되고 말이 되어 통역까지 해내는구나! 내가 다시 자신감을 얻었고 활기를 되찾았던 그때를 생각하며 그 여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캄보디아 그 여인도 내가 겪은 것처럼 이 동네 저 동네 드리워진 경계를 허물고 싶을 것이다. 함께 가족이 되고 싶은 소원을 담고 있을 것이다. 다른 꽃들처럼 하나의 의미 있는 꽃이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 같다.
나는 슬쩍 궁금해진다. 그녀의 남편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매를 맞지는 않을까.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 질환자는 아니라 믿고 싶다. 한 남자의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혹은 올케로 당당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국적 문제는 잘 해결되었는지, 우리 음식을 잘해서 시댁 식구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지, 내가 프랑스 음식 먹을 때 김치 생각이 났듯 그녀는 김치를 먹어야할 때 엄마의 손길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은 추측일 따름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살아야할 처지가 아니겠는가. 슬며시 모습을 감춘 그녀를 뒤따라가지 못해 아쉽지만 내가 받은 상처와 그녀의 것이 하나가 되는 공감대를 간직하고 있다. 그녀는 옛날 파리의 몽소(Monceau)공원 한 모퉁이에서 방황하던 또 다른 나였다.
내가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송이 꽃을 피웠듯이 그녀도 아마 예쁜 꽃을 피워 잘 살아가리라 믿어본다. 우연히 우리 동네에서 또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꼭 친구가 되어 주어야겠다.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말을 잘 배우도록 도와줘야겠다. 음식과 커피 한 잔으로 ‘안녕’을 대신하고 함께 아름다운 붓꽃 한 송이를 피우고 싶다. 큰 붓꽃, 작은 붓꽃, 수많은 붓꽃들에 둘러싸인 그녀가 우리와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만들고 싶다.
하늘은 뭉게구름으로 꽃밭을 만든다. 초여름의 고요와 풀벌레 소리는 여유롭다. 연못 속의 물고기들이 퍼덕거린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다가 물속으로 숨는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서로 몸을 맞대고 있는 꽃들을 간질인다. 꽃들이 활짝 웃는다.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만큼 붓꽃이 성큼 내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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